유럽연합(EU)이 27개 회원국에 적용되는 암호화폐 규제 법안에 잠정 합의했다. 유럽 금융 당국에는 강력한 감독 권한을, 암호화폐 사업자들에는 엄격한 소비자 보호 및 자금 세탁 방지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골자다. 2020년 논의를 시작한 EU의 법안이 올해 벌어진 ‘루나 코인 폭락 사태’를 계기로 신속한 합의에 이르면서 수십 개국을 아우르는 첫 암호화폐 규제가 탄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의회는 6월 30일(현지 시간) EU 이사회와 암호화폐규제기본법안(MiCA, Markets in Crypto-Assets)에 잠정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법안에 따르면 앞으로 유럽증권시장청(ESMA)은 비트코인·이더리움을 포함한 암호화폐 시장 전반을 감독하는 권한을 갖게 된다. 각 회원국에 법안 집행을 맡기되 특정 암호화폐 플랫폼이 투자자를 보호하지 못하거나 시장 건전성을 위협하면 ESMA가 개입할 수 있다.
올 5월 한국산 코인 루나의 대규모 인출 사태로 안정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됐던 스테이블코인(실제 자산에 가치가 연동된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안도 담겼다. 이에 따라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대량 인출에 대비해 충분한 준비금을 보유해야 하며 일일 거래량은 최대 2억 유로(약 2714억 원)로 제한될 수 있다.
또 암호화폐 채굴과 사용 과정에서 막대한 전력을 써야 한다는 환경 문제에 대응해 주요 암호화폐 업체들이 각각 에너지 소비량을 공개하도록 했다. 이 밖에 암호화폐를 이용한 자금 세탁을 막기 위해 거래소들이 거래자의 신원 정보를 미리 확보하고 당국이 요청할 경우 이를 제공하도록 했다.
다만 대체불가토큰(NFT)은 리투아니아·아일랜드·헝가리 등 일부 국가의 반대로 법안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유럽의회는 향후 NFT를 포함할지 여부에 대한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논의를 주도한 슈테판 베르거 유럽의회 경제위원장은 “우리는 암호화폐에 대한 포괄 규제를 만든 최초의 대륙이 됐다”며 “무법 지대와 같은 암호화폐 시장에서 MiCA가 글로벌 기준을 제시했다”고 자평했다. 법안은 유럽의회 전체의 표결을 거쳐 이르면 2024년부터 시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세계 최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인 테더의 파올로 아르도이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규제의 명확성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의 단테 디스파르테 최고전략책임자(CSO)도 이번 합의를 “중요한 이정표”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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