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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보다 늦게 죽어야 하는데”…발달장애인 가족의 눈물[안현덕 기자의 LawStory]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건 긴사랑(長愛)입니다.>

부모 등 돌봄 사라지면, 홀로 남게 되는 발달장애인

결국 노숙자 등 극단으로 몰릴 수 밖에 없는 ‘현실’

걱정이 불안으로 또 절망에 따른 극단적 선택으로

24시간 지원 체게 구축 등 국가책임제만이 해결책

전국장애인부모연대 6일 2개 결의문 국회에 전달

더이상 희망고문 없어야, 연이은 참사 막을 수 있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지난달 30일 용산역 광장에서 연 ‘기획재정부 규탄 전동행진 1박 2일 투쟁선포 결의대회’에 참가한 발달장애인 등 관계자 1000여명이 ‘2023년 본예산 장애인권리예산 보장’ 등 구호를 외치고 있다. /안현덕기자




‘기획재정부 규탄 전동행진 1박2일 투쟁선포 결의대회’가 열린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역 광장. 호우주의보 속 장대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결의대회장은 참여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관계자 등 1000여명으로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전동휠체어에 몸을 싣고, 몇몇은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참석했다. 연일 내리는 굵은 장맛비로 비(非)장애인들조차 활동이 쉽지 않은 날씨였으나 이들에게는 그리 큰 장애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장애인 권리예산 쟁취’, ‘발달·중증장애인 지역사회 24시간 지원 체계 보장’ 등 구호를 있는 힘껏 외쳤다.

결의대회 자리에서 만난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표는 발달·중증장애인에 대한 24시간 지원 체계가 반드시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거 가운데 하나로는 ‘노숙인 재활·요양시설 현황’ 자료를 근거로 한 5년 전 기사를 제시했다. 2017년 6월 기준 시설 57곳에 입소한 노숙인 7118명 가운데 장애등록 인원이 4157명으로 전체의 58.7%에 해당한다는 내용이었다.

윤 대표는 “발달장애인들은 부모가 돌아가시거나 돌봐줄 형제 등 친척조차 없다면 결국 노숙인 신세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며 “언젠가는 자녀를 홀로 두고 떠나야 한다는 걱정과 불안감에 발달 장애인 부모들은 우울증을 앓거나 최악의 경우 극단적 선택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서울시복지재단이 지난 4월 발표한 ‘고위험 장애인 가족 지원방안 연구’에 따르면 장애인 돌봄자 374명 가운데 35%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거나 시도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 3명 가운데 1명(36.7%)은 우울·불안 등 정신 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고 했다. 발달장애인을 키우며 생긴 걱정이라는 씨앗이 자녀를 홀로 남기고 떠나야 한다는 불안감으로 자라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셈. 이들 부모가 ‘우리 애보다 하루라도 늦게 죽는 게 꿈’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이는 이유다.

실제로 지난달 24일에는 중증 발달장애가 있는 20대 딸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50대 A씨에게 징역 6년이 선고됐다. A씨는 지난 3월 2일 자택에서 중증 발달장애인인 20대 딸을 질식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이튿날 극단적 선택을 하려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경찰에 “내가 딸을 죽였다”며 직접 경찰에 신고했다. 집 안에서는 ‘다음 생에는 좋은 부모를 만나라’는 유서가 발견됐다. 앞서 5월 23일에는 서울 성동구에서 40대 여성이 발달장애가 있는 6살 아들과 함께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같은 달 30일 경남 밀양시에선 발달장애 자녀가 있는 부모가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에서 1일 열린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T4 장례식에서 상여행진 중 장애인 참석자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발달·중증장애인에 대한 24시간 지원 체계 구축 등 국가책임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전국장애인부모연대를 중심으로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돌봄 사각지대를 없앴다는 취지의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는 했으나 시행까지는 최소 2년 이상이 소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5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일상생활 훈련, 자립생활 등을 제공하는 발달장애인 통합돌봄서비스센터의 설치 근거를 마련한다는 점이다. 중증 발달장애인 가족을 위한 통합돌봄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이나, 시행까지 2년의 유예기간을 두었다. 광주 등지에서 시범서비스를 시행한 후 평가해 24시간 지원 체계를 구축할지 결정하는 만큼 실제로는 3년 가까이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게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측 설명이다.

윤 대표는 “현재 시행 중인 데이 케어 서비스(Day Care Service)와 전문 인력 서비스를 접목하고, 여기에 돌봄에 참여하는 숙련된 전문인력 수를 늘린다면 24시간 지원 체계를 금새 구축될 수 있다”며 “현재 진행 중인 발달장애인 지원 서비스를 그대로 활용하고 또 예산이 크게 소요되지 않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들여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핵심은 중·경증 등에 따라 발달장애인에게 적합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이라며 “앞으로 국회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등 변화를 위한 움직임에 박차를 가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오는 6일 국회에 ‘발달장애인 참사 대책 마련을 위한 촉구 결의안’과 ‘발달자애인 참사 대책 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을 전달할 예정이다. 이들은 촉구안에서 ‘가족 동반 자살 등 참사가 국가 지원체계 부재에 따른 사회적 재난’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국회 내에 ‘발달장애인 참사 대책 특별위원회’를 설립, 2023년 12월 31일까지 운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특별위원회 등 활동을 통해 24시간 돌봄 지원 등 지원체계 구축과 ‘제2차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을 수립하라는 게 이들의 목소리다. 아울러 실질적 현실을 파악하기 위한 발달장애인 가족 대상 전수조사도 요구사항에 포함시켰다.

윤 대표는 “전 정부도 발달장애인 대책을 시행한다고 공언했으나 실상 제대로 되지는 않았다”며 “윤석열 정부는 초기부터 발달장애인 대책에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수년 간 ‘희망고문’으로 고통받았는데, 현재는 기대조차 힘들다는 얘기다. 그나마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발달장애인 대책 추진에 적극적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게 위안이 될 만한 대목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정부가 발달장애인 문제가 사회 한 켠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해결 과제라는 인식을 가질 때 극단적 선택 등 참사가 사라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현 시국에서 정부는 물론 국회가 나서지 않을 때에는 자칫 절벽 끝으로 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감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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