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후반기 국회가 시작된 지 35일째인 4일 여야가 극적으로 국회 정상화의 첫걸음을 뗐다. 이날 오전만 해도 여야는 전일 비공개 협상의 결렬 책임을 두고 장외에서 뜨거운 공방전을 벌였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의 요구를 일부 수용해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중재안을 제안했지만 이를 끝내 거부했다며 민주당을 향해 “입법 폭주는 자멸로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날을 세웠다. 하지만 민주당의 의장단 단독 선출을 불과 두 시간을 채 남기지 않고 협상이 급물살을 탔다. 국민의힘이 의원총회 끝에 “상임위원장 선출을 여야 합의로 처리한다고 약속하면 의장단 선출에 협조하겠다”고 제안하고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가 이를 한 시간 만에 수용하면서다. 국민의힘은 약속대로 본회의에 참여해 김진표 국회의장 내정자에 대한 찬성 표를 던지며 새 의장의 정당성에 힘을 실어줬다.
국민의힘이 한발 물러나 의장단 선출에 합의하기로 결정한 것은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위기감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복합 위기에 민생이 벼랑 끝에 몰렸지만 여당은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내부 권력 투쟁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를 증명하듯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지르는 이른바 ‘데드크로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수영 시사평론가는 “새 정부의 지지율이 데드크로스를 맞이한 상황에서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는 여당의 현실적 절박감이 양보에 나선 배경”이라며 “실력 있는 여당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정상화의 물꼬를 터뜨려야 했다”고 말했다. 국회 공백이 부담인 것은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여당은 행정부에 기댈 수 있지만 국회에 의존하는 민주당은 벼르던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불발 되면서 ‘존재감 없는 야당’이라는 위기에 처했다.
여야는 “협치의 기운은 싹트기 시작했다”고 자평했지만 완전한 정상화까지 적지 않은 난항도 예상된다.
당장 법제사법위원장 배분을 두고 여야는 조금씩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민주당은 “법사위원장을 포함한 상임위 배분 문제는 여야가 조속히 협의해야 할 문제”라며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반면 국민의힘은 “법사위는 우리 당이 맡기로 (민주당의)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과 박 원내대표가 공개 발언했다”며 법사위 확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민주당이 강제로 상임위원장을 배정할 가능성은 사라졌지만 향후 상임위 배분 과정에서 갈등의 불씨는 여전한 셈이다.
개원 협상의 최대 쟁점이었던 사개특위 구성에 대해서도 권 원내대표는 “여야가 동수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 자리를 여당에 줘야 한다. 이게 최종 양보안”이라고 못 박았지만 박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결코 수용할 수 없는 무리한 요구”라고 일축했다. 또한 여권 일각에서는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사개특위 참여 가능성을 열어주면서 야당이 밀어붙인 검수완박 입법에 동조하는 모양새를 취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야가 당장의 급한 불을 끄기는 했지만 후반기 국회가 정상 궤도에 오르기까지 험로가 예상된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법사위 권한 조정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기능 강화에 대해 여야가 공감대를 이뤘다는 민주당의 주장을 두고도 충돌했다. 권 원내대표는 “공감대라는 것은 오버해서 해석한 것”이라며 “국회 운영을 합리화하고 국민 친화적으로 바꾸는 부분은 의견이 있으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시켰다.
국민의힘은 통 큰 결단에 대해 화답할 차례라며 상임위 구성에 속도를 높이라고 민주당을 압박했다. 권 원내대표는 “아무리 늦어도 일주일 내에 상임위는 구성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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