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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람냄새 이효리’는 난해하다. 뚜렷하게 메시지를 던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렵게 느껴진다. 작품의 의도를 시청자에게 주입하지 않고 도리어 생각하게 만드는 ‘난해함의 재미'다. 그래서 보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다. 가수 이효리의 상상에 이옥섭 감독, 배우 구교환의 상상을 더해 상상이 나온, 19분의 짧은 영화의 파급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람냄새 이효리’는 티빙 오리지널 ‘서울체크인’에서 만난 이효리와 이옥섭, 구교환이 가볍게 시작한 프로젝트성 숏필름이다. 2X9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옥섭, 구교환은 영화계 소문난 파트너다. 이들은 9년 차 연인이자 창의적인 작업을 나누는 동반자로 유튜브를 통해 함께 작업한 단편을 공개하고 있다. 평소 이 커플을 눈여겨보던 이효리의 요청으로 만남이 진행됐고, 서로의 상상력을 나누다가 작업이 성사됐다.
작품은 불우하게 살아가는 삼 남매 교환(구교환), 시영(홍시영), 달기(심달기)가 코피가 멈추지 않는 교환을 이용해 코피로 혈서를 쓰며 생계를 유지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톱스타 효리(이효리)는 혈서를 써달라고 의뢰하고, 삼 남매를 집으로 초대한다. 그렇게 만난 효리와 삼 남매는 과거 한 방송에서 만난 기억을 떠올린다. 하지만 서로 다른 기억으로 갈등을 빚는다.
세 사람의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상상력의 결정체 ‘사람냄새 이효리’는 제목부터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소탈한 매력의 톱스타 효리를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제목인 듯했으나, 작품의 결말을 보면 소름 끼친다. 작품 내내 트림을 하는 효리가 알고 보니 반려견을 잡아먹은 아저씨를 자신이 잡아먹었다고 자수하기 때문. 효리가 트림을 하고 “미안. 사람 냄새나지?”라고 한 뒤 달기가 “좋은 냄새난다. 맛있는 갈비 냄새”라고 하자, 효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비슷한 거다”라고 하는 장면은 다시 되돌려 보면 섬뜩하다.
효리와 삼 남매의 과거 기억이 다른 것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공통적인 기억은 불우한 삼 남매의 집에 효리가 방문하는 방송을 촬영한 것. 이후의 기억은 갈린다. 효리는 삼 남매에게 선물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달기에게 갖고 싶은 선물을 물어봤고, 달기의 소원이 “귀엽다”며 시청자들에게 공개했다. 선의의 마음이었다. 반면 삼남매는 원치 않았지만 동의 없이 공개한 이효리 때문에 집 앞에 선물이 쌓였다. 문제는 그 선물이 ‘햄스터’였다는 것이다. 80마리의 햄스터는 처치 곤란이었고. 삼 남매는 햄스터를 죽일 수 없어 자신들이 밖을 돌아다니며 텐트를 치고 노숙을 했다. 이들은 이 모든 것이 이효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한다. 효리는 자신의 영향력으로 삼 남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고 여기고, 달기의 소원을 동의 없이 공개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달기가 “문 앞에 쌓인 택배 때문에 문이 열리지 않아 학교도 못 갔다”고 하자, 효리가 “학교 안 가면 좋은 거 아냐”라고 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달기는 무작위로 살아있는 생명을 선물로 보낸 시청자 보다 “언니가 책임감을 느끼셔야 한다”며 효리를 탓한다. 작품을 보는 이들은 햄스터 때문에 노숙을 하는 삼 남매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상황을 대하는 태도도 제각각이다. 효리가 무릎을 꿇고 엎드리자, 달기와 시영은 “극복했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곧 효리가 “요가하는 것”이라고 하자 울분이 폭발한다. 두 사람은 효리에게 “사과하라” “언니는 요가할 자격 없다”고 소리친다. 이 와중에도 효리는 트림을 하고 “너무 사람 냄새났지?”라고 한다. 한켠에서 열심히 혈서를 쓰고 있는 교환은 효리에게 거액의 사례비를 받을 생각에 “그럴 수 있다”고 남매를 말린다.
작품 말미에는 효리가 교환에게 쓰라고 시킨 혈서가 완성된다. 반려견의 죽음 때문에 사람을 죽였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심장을 쿵 떨어트린다. ‘반려견을 잡아먹은 아저씨를 단죄한 것에 초점을 두느냐’ 아니면 ‘인간의 존엄성 또는 생명 존중에 집중하느냐’라는 문제도 생각하게 만든다.
정작 ‘사람냄새 이효리’는 명확한 주제를 던지지 않는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더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볼수록 그 난해함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메시지를 주입하지 않고 시청자의 상상력을 키우는 힘이 있다. 평소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해석되는 게 아닐까.
◆ 시식평 - 시영이 래퍼 기리보이라니. 데뷔작 잘 골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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