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존치 필요성이 줄었거나 운영 실적이 저조한 행정·자문위원회를 전수조사하고 현행 629개 중 30%(200개) 이상에 대한 정비를 추진한다. 역대 정부마다 상당수의 위원회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해 예산 낭비로 이어졌다. 특히 자리를 만들기 위한 무늬만 위원회도 상당수로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다만 실효성 있는 정비를 위해서는 각종 위원회 설치 규정이 포함돼 있는 많은 법 조항의 개정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상당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행정안전부는 ‘정부위원회 정비 추진계획’을 5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보고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국무총리실과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 등 장차관급 중앙정부 부처 소속 행정·자문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시기 530개에서 박근혜 정부 시기 558개, 문재인 정부 시기 631개로 급증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현재도 629개다. 소속 기관별로는 대통령실 소속이 20개, 국무총리실 소속 60개, 각 중앙 부처 소속 549개다. 중앙 부처 중 가장 많은 곳은 국토부(60개), 보건복지부(49개), 행안부(35개) 순이다.
정부의 각종 위원회는 일반적으로 정부 정책에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민간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합의제 방식으로 운영된다. 행정위원회는 대통령 소속 규제개혁위원회, 행안부 소속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처럼 준사법·입법 기능이 있는 위원회로 42개가 있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자문 기능을 위한 자문위원회가 나머지 587개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자문위원회가 많은 이유로는 ‘면피용’ 위원회 설치·운영이 꼽힌다. 각종 정책 결정 과정에서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만들고 이를 근거로 민간 전문가 의견이 반영된 결정으로 포장하는 방식이다. 최근 이상민 행안부 장관도 경찰 통제 강화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을 기존 국가경찰위원회 대신 별도로 구성한 자문위원회의 권고안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실적이 부실하거나 기능이 활발하지 않은 위원회의 통폐합·정비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모든 위원회의 존치 필요성, 운영 실적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자체 정비안을 마련한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대통령 소속 위원회부터 일단 정리한다는 계획을 세워 과감하게 정비를 추진하기로 했다”며 “2019~2021년까지 3년간 살펴보면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위원회 회의가 거의 없었다. 상당수 위원회가 형식적으로 존재하거나 운영되고 고비용·저효율이 굉장히 심각한 상태라는 평가가 있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부실하고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위원회는 폐지 △사실상 부처 업무를 수행하는 위원회는 폐지하고 부처 내에서 재설계 △기능과 목표가 유사한 위원회나 환경 변화에 따라 성격이 달라져야 하는 위원회의 통폐합 △필요성이 인정되는 위원회의 경우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최대한 총리 소속으로 이관의 4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 소속 위원회는 60~70%, 총리·부처 소속 위원회는 30~50%가량 줄인다는 계획이다. 대통령실은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자치분권위원회의 경우 기능이 유사하다고 보고 통합을 추진할 방침이다.
행안부는 민관 합동 진단반을 구성해 부처별 정비안을 직접 점검하고 필요하면 개선안을 권고할 예정이다. 위원회 정비안이 확정되면 이를 반영할 법령 개정안을 신속히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최상한 한국행정연구원 원장은 “각종 법을 전수조사하고 법 개정을 통해 필요 없는 위원회를 과감히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행안부는 불필요한 위원회의 장기간 방치를 막기 위해 원칙적으로 모든 위원회에 최대 5년 이내의 존속 기한을 설정하도록 행정기관위원회법 개정도 추진한다. 행안부의 한 관계자는 “부처별 활동 현황과 정비 상황을 종합해 공개하고 운영이 부실한 위원회는 예산 당국과 협의해 예산을 삭감하도록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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