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발표된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0%였다. 1998년 11월의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다. 물가 상승률이 높은 것도 문제지만 상승 속도가 빠른 것은 더 문제다. 물가 상승률이 3%대에서 4%대가 되는 데는 5개월이 걸렸다. 이후 4%대에서 5%대는 두 달, 5%대에서 6%대는 한 달 만에 올라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직접 민생 현안을 챙기겠다”고 밝혔다. 물가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대통령보다 먼저 직접 나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사례에서 보듯 시장 개입이라는 무리수를 둘 것 같아 걱정이다.
추 부총리는 지난달 28일 한국경영자총협회에 가서 물가 상승세를 부추기는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지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임금 인상 경쟁을 벌이는 것은 기존 인재를 붙잡아두고 새로운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다. 추 부총리의 지적처럼 “생산성을 초과하는 지나친 임금 인상”이 된다면 기업은 경쟁력을 잃고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다. 반대로 임금 인상이 인재 확보를 위한 최고의 투자가 돼 더 큰 경쟁력을 갖출 수도 있다. 기업의 판단에 맡길 일이지 정부가 개입할 사안은 아니다. 국가 경제를 책임진 추 부총리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런 발언은 자제했어야 했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횡재세 이슈도 비슷하다. 횡재세는 국제 유가 급등으로 국내 정유사들이 횡재라고 할 만큼 폭리를 취하고 있으니 여기에 세금을 물려 환수하자는 것이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정유사의 초과 이익을 최소화하거나 기금 출연 등을 통해 환수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정유사들도 고유가 상황에서 혼자만 배를 불리려 해서는 안 된다”며 고통 분담을 요구했다. 여기에는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적절한 답을 준 것 같다. 그는 주유소와 정유사에 기름 값을 내리라고 요구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트윗을 리트윗하며 “기본적인 시장 역학에 대해 깊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기름 값이 비싸면 자가용을 주차장에 두고 전철을 타면 된다.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어딘가에서 가격이 결정될 것이다.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하면 안 된다. 1980년대 미국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은 석유 회사들의 엄청난 이익을 환수하기 위해 초과이익세(windfall profit tax)를 부과했다. 석유 회사들은 이익을 세금으로 빼앗기자 유전 탐사와 석유 생산에 투자하지 못했다. 석유 공급이 급감해 세금 수입이 오히려 줄어들자 초과이익세는 폐지됐다.
정부가 할 일은 따로 있다. 시장 기능이 작동하기 어려운 부분을 챙겨야 한다. 경유 값이 오른다고 화물 트럭을 주차장에 세워둘 수는 없다. 정부는 경유 값을 낮추는 정유 회사의 법인세를 깎아줄 수 있다. 시장에 역행하는 세금 규제 대신 시장을 살리는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한다면 정유 회사와 화물 트럭 기사가 함께 기뻐할 것이다.
지금의 고물가를 만든 주범은 가깝게는 코로나19, 멀게는 금융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시중에 풀어놓은 유동성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큰 요인 중 하나다. 근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조급해하지 말고 조금씩 상황을 개선해나가야 한다. 다행히 희미하지만 고물가가 수그러드는 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물가 영향력이 큰 에너지 가격이 최근 큰 폭으로 하락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3월 장중 배럴당 130달러를 돌파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5일 99.50달러로 주저앉았다. 천연가스는 고점 대비 40% 이상 내렸다. 식탁 물가를 심각하게 위협하던 곡물 가격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조금만 더 졸라매면 허리를 펼 날이 올 것이다. 물가를 잡을 비법은 없다. 새 정부는 단칼에 해결하고 싶겠지만 과잉 의욕을 내다가는 탈이 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가는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기업과 가계가 힘들어하는 어두운 곳에 집중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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