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예민한, 별난, 엉뚱한, 상식 밖의. 한마디로 '이상한' 사람들을 따뜻하고 밝게 감싸 안는 포용의 드라마. 매회 완결 구조, 빠르고 밀도 높은 전개와 곳곳에서 터지는 유쾌함, 재미와 감동을 추구하는 보기 드문 파스텔톤 힐링물. 무엇보다 '배우 박은빈의 재발견'이라 불릴 만큼 인상적인 주연 캐릭터의 존재감과 김종완(넬), 선우정아, 원슈타인, 수지 등 OST 맛집까지.
이제 겨우 2회분 방송 됐을 뿐인데 이 드라마, 입소문이 심상치 않다. ENA라는 낯선 케이블 채널에서 지난 주 방영을 시작한 새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연출 유인식, 극본 문지원, 제작 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 얘기다. 자폐스펙트럼과 천재성을 동시에 지닌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의 대형 로펌 생존기를 그리는 작품으로 단 2회 만에 한국 넷플릭스 인기 순위 1위에 오르며 앞으로 전개될 에피소드들에 기대감을 한껏 더했다.
"제 이름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역삼역?"
시작은 '평범'했다. 남들과는 다르게 자기소개를 읊는 우영우를 처음 만난 '보통'의 사람들은 여느 사람들처럼 편견 섞인 시각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자기 마음대로 재단한다. 법무법인 한바다의 시니어 변호사 정명석(강기영)은 자기 팀에 배치된 신입 변호사 우영우를 보자마자 로펌 대표 한선영(백지원)에 따지러 가서는 "나(혹은 우리)와는 다를 것"이라며 "자격미달인지 제 편견인지 테스트 해보겠다"면서 우영우에게 능력을 증명해 보일 것을 요구한다.
우영우가 처음 맡게 된 '70대 노부부 살인미수 사건'. 정명석 팀장이 미처 보지못한 부분을 우영우가 짚어내고. 정명석은 그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이어 우영우에게 피해자 할아버지 병문안을 다녀오라면서 "직원 붙여줄게, 외부에서 피해자 만나는 거 그냥 보통 변호사들한테도 어려운 일이야"라고 무심코 말을 꺼냈다가 그는 다시 주워담는다. "미안해요. '그냥 보통 변호사'라는 말은 좀 실례인 것 같아."
이 드라마가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건, 이 지점에서 마침내 드러난다. 우영우는 "괜찮다, 저는 '보통 변호사'가 아니다"라며 쿨하게 그의 방을 나선다. 우영우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 '우영우' 그대로 온전히 대해주기를 바랐다. 그가 조금 낯설거나 예민하거나 별나거나 엉뚱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우영우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 또는 불편한 시선 뿐 아니라 '장애인'을 향한 의도적이고 과한 관심까지도 거절한다.
우영우는 오히려 자신의 처지를 숨기지 않고 당당히 드러낸다. 첫 사건에서 국민 참여 재판을 통해 할머니 사정의 딱함을 배심원들에게 호소하기로 하고. 수려한 말솜씨나 설득력으로 사건을 맡으려 하던 다른 변호사들과 달리 우영우는 "피고인 사정이 딱하다는 걸 보여주기에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장애인, 본인이 나서는 게 가장 좋을 것"이라며 사건을 끝까지 맡기로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법정 장면은 감동으로 그려지며 그때부턴 줄줄 흐르는 눈물을 막을 재간이 없다.
우영우 변호사가 다루는 사건들은 흔히 있을 법한 평범한 사건들이다. 평범한 사건들을 평범하지 않은 ‘이상한’ 우영우 변호사가 어떤 다른 시각으로 사건을 해석하고 풀어나가는지가 관건이다. 우영우 변호사의 엉뚱한 매력으로 극을 유쾌하게 풀어가면서도 법정 드라마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다. 섬세한 연출이 드라마 인기를 더한다.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배가본드', '자이언트' 등을 연출한 유인식 PD와 영화 '증인' 각본으로 주목받은 문지원 작가가 극을 이끈다. '고래'와 같은 특정 개념이나 단어에 집착하는 모습, 상대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반향어, 사람들이 많은 곳에선 근접 접촉을 줄이려 헤드폰을 착용해 소음을 차단하는 것이나 변화에 익숙지 않아 아침과 저녁 식사가 늘 같은 것 등 자폐스펙트럼 장애의 특성을 극중에 부드럽게 녹여낸다.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우영우의 발걸음과 리듬에 맞춰 한 걸음, 한 걸음을 기다려주고 마침내 그를 응원하게 된다.
우영우는 매회 각기 다른 사건을 겪으며 성장한다. 빌런인 줄 알았던 정민석 팀장이 우영우를 어엿한 변호사로서 성장케 하는 '츤데레' 멘토 역할을 담당한다. 우영우와 로스쿨 동기인 최수연(하윤경) 또한 현재는 은근히 경쟁 의식을 느끼는 캐릭터로 나오지만 남은 에피소드에서 우영우와 어떤 케미를 보일지 기대된다. 우영우 곁에서 '고래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진 이준호(강태오)와의 묘한 우정과 관계 발전 역시 관전 포인트. '인턴기자'로 유명한 연기자 주현영의 본업 귀환도 반갑다. 여기에 구교환, 문상훈 등 캐릭터 확실한 배우들의 카메오 출연까지 더할나위 없다.
동시기 [왜 오수재인가], [닥터로이어] 등 변호사가 주인공인 법정 드라마가 인기를 얻는 가운데 음모와 배신, 갈등요소 없이도 충분히 보는 맛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증명해냈다. 매회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엔딩 또한 다음 화가 궁금해질만큼 서사가 있어 다음 수요일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처럼 1시간 동안 무해함으로 꽉찬 재미와 감동은 오랜만이다. 박은빈 배우가 제작발표회 때 언급했듯 현실 속에 이미 실제 '자폐인 변호사'가 존재한다. 드라마가 아니었으면 모를 수 있었던 사실이다. 드라마 한 편이 편견을 부수고 기어이 세상을 이롭게 이끈다는 제작진과 배우의 믿음. 그렇게 만들어낸 앙상블이 참 따뜻했고 유쾌했다.
◆시식평 -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이야기
관련기사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