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이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연루된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를 기존 반부패수사부가 아닌 형사부가 맡도록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4일 시행된 직제개편으로 형사부도 직접수사에 나설 수 있는 길이 열린 데 따른 것이다. 수사팀 활용폭이 대폭 넓어진 만큼 문재인 정부 시절 인사들에 대한 검찰의 동시다발적인 수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0일 서울경제의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은 4일 송 지검장의 지시로 반부패수사2부(김영철 부장검사)가 수사하던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을 형사1부(박혁수 부장검사)에 재배당했다. 이와 함께 형사1부는 사무분담을 통해 특수수사 경험이 있는 검사들도 보강했다. 반부패수사2부에서 이번 사건을 수사해온 김민석 검사가 형사1부로 자리를 옮겼다. ‘대장동 개발·특혜 의혹’ 사건을 수사한 반부패수사1부에서 형사1부로 합류한 방준성 검사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연루됐던 ‘채널A 기자 강요미수 의혹 사건’ 수사 방향에 이의를 제기했던 이력이 있다. 수사팀장을 맡게 된 박 부장검사는 직권남용죄 수사 경험이 풍부하다.
이번 재배당은 같은 날 시행된 검찰 직제개편에 맞춰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 시절 법무부는 검찰의 수사권을 축소하는 차원에서 검찰청의 경우 형사부 말(末)부 1곳에서만 검찰총장 승인 아래 인지수사에 나설 수 있도록 제한을 뒀다. 이 때문에 중앙지검 내 주요 사건들은 4차장 산하 직접수사부서인 반부패·강력수사부, 경제범죄형사부 등으로 몰렸다. 하지만 한 장관 취임 후 직제개편으로 형사부의 직접수사에 대한 족쇄가 풀리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검사장·지청장의 재량으로 모든 형사부가 직접수사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검찰로선 수사에 숨통이 트였다. 소수의 부서만으론 인력 면에서 여러 현안 사건들을 처리할 여력이 없어 핵심사건에만 수사력을 집중했는데, 이제는 전방위 수사가 가능해졌다.
송 지검장의 결정을 두고 검찰이 사정정국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2개월 앞으로 다가온 ‘검수완박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 시행에 앞서 가능한 모든 부서가 수사에 뛰어들어 ‘성과내기’에 돌입하지 않겠냐는 분석이다. 실제로 송 지검장은 사건의 성격, 부서별 업무부담 및 전문성 등을 고려해 청 내 사건 전반에 대한 재배당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직제개편이 시행되면서 중앙지검 4차장 산하에 있던 사건 중 일부에 대한 재배당 절차가 취해졌다”며 “그 동안 형사부 말부만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는 지침에 사건이 특정부서에 몰렸는데, 이를 다시 균등배분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사건을 넘긴 반부패수사2부는 당분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비위 의혹,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 잔여 사건 수사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은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회가 4월 22일 임 전 비서실장과 조 전 민정수석을 비롯해 조현옥 전 청와대 인사수석, 김상곤 전 교육부장관, 김영록 전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정현백 전 여성가족부장관, 강경화 전 외교부장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한 건이다. 국민의힘 측은 문재인 정부가 2017~2018년 민정수석실 등을 통해 전 정권 부처별 산하 공공기관 인사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이 문제 삼은 공공기관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마사회,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재외동포재단 등이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2019년 관련 혐의로 임 전 비서실장 등을 상대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사건을 담당했던 서울동부지검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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