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런스와 크리스는 ‘사람이 그냥 벌레처럼 죽어 나가는’ 험한 환경의 슬럼가인 뉴욕 브롱스 출신으로, 지역인재 추천에 따라 동부 명문대 편입을 위한 면접을 앞두고 있다. 두 사람과 이들을 인솔한 시민단체 직원 데이비드는 면접 전날 한 모텔에 모여 최종점검 차원의 모의 면접을 하고, 다음날 정식으로 면접시험을 치른다. 크리스와 클라런스를 각각 면접한 교수들과 데이비드는 누구를 합격시킬지를 두고 각자 생각하는 공정한 기준과 경쟁의 의미에 관한 논쟁을 벌인다.
두산아트센터에서 지난 5일부터 공연하고 있는 연극 ‘편입생’은 이러한 대학 편입 과정을 통해 교육 시스템의 공정성 문제를 고찰한다. ‘공정’을 주제로 공연·전시·강연 등을 진행한 올해 ‘두산인문극장’ 마지막 작품으로, 미국의 극작가 루시 서버의 작품을 윤혜숙 래빗홀시어터 대표의 연출로 이번에 국내 초연하게 됐다.
편입을 노리는 둘 모두 일반적 대입 기준으로 따지면 미달한다. 클라런스는 문학을 사랑하며, 면접관들도 감동하게 하는 에세이를 쓰는 섬세한 감각의 소유자다. 하지만 SAT 시험 점수가 기준에 크게 못 미친다. 크리스는 레슬링 실력이 출중해 체육특기자를 노리면서도 SAT 점수가 매우 높지만, 욕을 달고 살면서 여성·성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도 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잠시 방황했던 과거도 있다. 한 면접관은 둘 중 한 명이 대입 기준에 못 미친다며 합격에 끝까지 반대하기에 이른다. 두 청년 모두 중산층 이상의 가정환경에서 교육 받고 자랐다면 각각 높은 시험점수와 제대로 된 화법을 얻었을 테지만, 그런 점은 면접 순간에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공정’이라는 이슈가 한바탕 휘젓고 있는 한국사회에도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에게도 지역균형, 기회균형 전형으로 입학한 대학생들에게 지균충, 기균충 등 멸칭을 쉽게 붙였지만 수도권 중산층 이상의 학생들과 같은 교육 기회를 받지 못하는 현실은 외면해 온 역사가 있다. 데이비드가 면접 심사관들에게 전하는 “그 애는 결핍에서 시작했어요. 우리는 과잉에서 시작했고요”라는 호소는 정확히 관객들을 향한다.
하지만 연극이 하고 싶은 말은 단순한 대입 과정의 공정성 수준이 아니다. 극중 두 주인공은 출발선이 다르다는 이유로 생존을 위협받았던 것도 모자라 편입을 위해 힘겨운 과정을 거치고, 탈락하면 새로운 기회를 얻을지도 불투명하다. 윤혜숙 연출가는 “인물들의 현재가 단순히 삶의 어떤 순간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각 인물들의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유산과 빚, 덕과 탓이 축적된 시간임을 들여다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2018년 초연 당시 “미국 사회의 계층, 특권, 기회에 대한 문제를 탐구하는 작가의 관점이 폭넓은 인물을 통해 드러난다”는 호평을 받았다. 23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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