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추진하는 이른바 ‘칩4(한국·미국·일본·대만 반도체) 동맹’에 대해 대통령실이 14일 “지금 상황에서는 대답을 드릴 만한 게 없다”면서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다만 "다양한 채널을 통해 반도체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혀 칩4 동맹을 놓고 여러 측면에서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한 관계자도 “(칩4 동맹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은 하고 있다”면서도 “칩4 동맹이 중국을 압박하고 배제하는 식으로 비치는 것은 부담”이라고 말했다.★본지 3월 28일자 1·3면 참조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이른바 칩4 동맹에 대한 입장을 묻자 "아시다시피 미국은 지난해 6월 공급망 검토 보고서에서 반도체 분야의 파트너십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칩4 동맹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은 것은 아니지만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일정 때 부각된 반도체 협력 기조를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워싱턴 소식통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3월부터 추진해온 칩4 동맹 참여 여부를 한국에 8월 말까지 알려달라고 최근 요청했다. 칩4 동맹은 미국이 한국·일본·대만 등과 반도체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구상 중인 다자 협력체다. 뚜렷한 개념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외교가에서는 사실상 '반중(反中)협의체'로 평가되는데 5월 일본에서 출범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기 위한 미국 주도의 협력체가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국 정부는 신중한 모습이다. 반도체 선진국 4개국의 협력 움직임을 중국에서 환영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사드 배치 당시 중국 정부의 보복 조치를 떠올리기도 한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이 사드를 설치하다 중국에 세게 맞은 기억이 있지 않으냐"면서 "중국의 보복 여부는 실제로 (칩4 동맹 가입까지) 가보지 않으면 모르지만 공무원들은 책임지는 자세로 일해야 하므로 모든 가능성을 검토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교부 1·2차관을 모두 지낸 신각수 전 주일 한국 대사는 "한국 기업이 생산하는 반도체를 대부분 중국에 수출하는데 (칩4 동맹의) 한계가 분명하지 않으냐"면서 "정부가 냉정히 잘 판단해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럼에도 한국의 칩4 동맹 가입은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 관계자 역시 "칩4 동맹에 들어갈 때의 장점과 들어가지 않았을 때의 단점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며 "나머지 3개국끼리 칩4 동맹을 맺게 되면 한국에 많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현재 칩4 동맹 가입 시 한국에 대한 중국의 보복 가능성과 중국과 대만 간 양안 갈등,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문제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고민할 게 너무 많은 문제"라며 "계속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의 참여가 불가피한 만큼 칩4 동맹이 반중 협의체로 인식되는 데 대한 정부 내의 부담도 존재한다. 워싱턴 한 소식통은 "칩4 동맹이 미중 대결 형태로 흘러가는데 사실 중국 견제보다는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한국과 대만·일본은 이미 미국과 양자 간 반도체 협력을 충분히 하고 있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공급망 문제가 불거지니 '쇼잉(보여주기)'이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소식통은 "한국도 결국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며 "칩4 동맹이 대중 견제 성격으로 흘러가는 것은 부담"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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