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강달러발(發)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달러화 강세로 전 세계 제조업 업황이 둔화하고 그로 인해 글로벌 경제 성장이 정체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안전자산으로서의 달러화가 더욱 각광을 받게 되는 ‘둠루프(doom loop·악순환)’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우려가 고조되는 이유는 다른 통화들을 압도하는 ‘슈퍼 달러’의 독주다. 주요 통화 대비 미 달러화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이달 14일 108.5로 약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후 18일에도 107.92로 고공 행진을 이어갔다. 달러·유로 환율은 14일 0.9991달러로 패리티(1유로=1달러)가 무너진 상태로 장을 마쳤으며 같은 날 엔·달러 환율 역시 한때 139엔대까지 올라(엔화 약세) 24년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블룸버그는 17일(현지 시간) “역사적으로 강달러는 세계 경제에 광범위한 타격을 줬다”며 강달러발 악순환을 경고한 투자자문사 JST어드바이저의 존 터렉 설립자의 발언을 소개했다. 그는 “우리는 전에 없던 강달러의 악순환을 겪고 있다"면서 ‘강달러→글로벌 제조업 둔화→원자재 가격 하락→전 세계 무역량 둔화→글로벌 경제 성장에 대한 우려 증가→안전자산으로서의 달러 가치 추가 상승’이라는 부(負)의 연쇄 고리가 형성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전 세계 교역이 대부분 미 달러화로 결제되는 상황에서 달러화 강세는 기업들의 원자재 수입 비용을 끌어올리고 기업의 비용 부담 상승은 제조업 업황에 부정적 영향을 줘 결국 글로벌 성장 둔화 우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기타 고피나트 수석부총재, 국제결제은행(BIS)의 신현송 국장 등도 국제 교역에서 달러화의 역할을 고려할 때 강달러가 전 세계 금융시장을 위축시키고 실물 투자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분석한다"고 전했다.
게다가 현재로서는 이러한 강달러의 고리를 깰 만한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인한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면서 유로화 가치가 연일 하락하고 있고 일본은행(BOJ) 역시 수요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며 나 홀로 돈풀기를 계속해 달러 강세에 힘을 보태고 있기 때문이다. 터렉 설립자는 “최근 부양책을 발표한 중국이 와일드카드가 될 수 있다”면서도 “현재 진행형인 코로나19 통제를 고려할 때 통화 완화 정책이 실물경제에 원활하게 전달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강달러 랠리의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달러 강세의 부작용을 우려해 금리 인상 속도 조절에 나선다면 달러 가치 상승세에 제동을 걸 수 있겠지만 물가가 워낙 높아 고강도 긴축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JP모건의 마이클 페롤리 미국 담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을 보면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무엇이든지 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며 달러가 추가로 상승할 여지가 있다고 봤다. 6월 FOMC 회의에서 연준 위원들은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를 90번이나 언급하는 등 정책 최우선 순위를 물가 안정에 두고 있음을 강조했다. 모건스탠리는 달러화 추가 상승을 예상하며 9월 말까지 달러·유로 환율이 97센트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당분간 브레이크 없는 강달러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으로 세계 경제에 대한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 경제만 놓고 보면 강달러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미국 기업의 수익에 악재로 작용한다. 이들 기업의 수익은 달러화로 표시되는데 강달러로 수익이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신흥국의 타격은 치명적이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올해 달러화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신흥국에서는 글로벌 자금 710억 달러(약 93조 원)가 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는 특히 한국과 대만 증시에서만 해외투자가들의 순매도 금액이 총 500억 달러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WSJ는 “신흥국의 경우 강달러로 달러 표시 외채 상환 부담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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