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은 늘 정권의 안정을 위협하는 뜨거운 감자다. 그럼에도 40년 넘게 노동개혁이 유행인 이유는 시들어 가는 선진국 경제를 살리는 특효약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영국과 네덜란드, 독일이 대표적인 성공사례고 실패나 미진한 사례로는 프랑스와 한국·일본 등이 있다. 한국은 김영삼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정권마다 조금씩 개혁을 해왔지만 노동규범이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적 지체 현상은 갈수록 심화될 뿐이다. 더구나 지난 5년간 노동시장 개혁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태만은 이를 더욱 가중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고용노동부 장관의 업무보고를 받으며 거듭 노동시장 개혁 의지를 피력했지만 메시지가 그렇게 강렬하지는 않았다. 이는 좋은 조짐이 아니다. 영국의 대처 수상은 1979년 선거 때부터 노동개혁에 승부를 걸었고 취임 후에는 치밀한 준비를 거쳐 기세등등하던 노동조합을 굴복시켰다. 이후 다섯 번에 걸친 노동법 개정을 통해 ‘늙고 병든 영국’을 지식경제 선도국가로 회생시켰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은 취임 초 노조 우위의 노사관계를 단숨에 역전시켰다. 공무원 신분의 항공관제사 노조는 대선 때 레이건을 지지했고 그 보답을 기대하며 1981년 무리한 파업을 벌였다. 레이건은 이틀 내 복귀를 명령했고 이에 불응하는 1만 명 이상의 조합원을 모두 해고해버렸다. 노동개혁을 통해 영국과 미국의 경제는 IT와 금융, 지식산업으로 고도화돼 갔다.
네덜란드와 독일 등 유럽국가의 노동개혁은 영국과 미국처럼 노조 힘빼기가 아니라 노조와의 타협을 통해 조금씩 노동 유연성을 높이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자율적 타협의 속을 들여다보면 언제나 국정 책임자의 강력한 의지가 작용했다. 1982년 네덜란드의 바세나르협약은 노사합의 형태지만 젊고 의욕에 넘치는 43세의 신임 루드 루버스 총리의 거친 압박과 회유가 주효했다. 그는 12년간 타협을 통한 유연화(negotiated flexibility) 노선을 견지했고 후임 빔 콕 총리가 유연안전성 개혁을 완성하여 네덜란드의 경제회생을 이끌었다.
2000년대 초 독일의 노동개혁은 슈뢰더 총리의 최대 업적이자 가장 최근의 성공사례다. 그는 자신이 직접 협상에 나서며 공들였던 ‘일자리 연대’를 위한 타협이 실패하자 우회로를 찾았다. 그는 자신의 오랜 친구였던 폭스바겐의 하르츠 노무담당 이사를 좌장으로 전문가위원회를 구성해 개혁 패키지를 만들도록 했고 이를 순차적으로 실행했다. 슈뢰더 개혁은 집권 사민당의 분열을 초래했고 정권을 잃는 단초가 됐지만 독일 경제회생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프랑스는 노동개혁의 지각생으로 2010년대에 뒤늦게 개혁에 나섰다. 사회당 올랑드 대통령의 노동개혁은 지지부진했고 결국 정권까지 잃는 실패의 아이콘이 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정부가 먼저 개혁안을 내고 반대파를 설득하는 전략으로 갔다. 그는 직접 갈등 현장을 누비며 거리토론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노동개혁에 매달려 왔다.
우리도 30년 가까운 노동개혁 경험을 갖고 있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은 고(故) 박세일교수를 사령탑으로 삼아 세계화 개혁과 노동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노동법 개혁을 위한 사회적 대화에서 노사의 묵시적 합의가 있었지만 국회 입법 과정에서 집권당의 큰 실착이 나오며 김 정부는 정치적 위기에 몰리게 됐다. 이 실패를 딛고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자 신분으로 1998년 2월 노사정 협상을 진두지휘해 대타협을 성사시킴으로서 외환위기 극복의 전기를 마련했다. 2015년 박근혜 정부는 김대환 전 노동부장관을 사령탑으로 세워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을 위한 ‘9.15 대타협’을 도출했지만 정부여당의 사후관리 실패로 합의는 파기됐고 박대통령은 정치적 부담만 떠안았다.
노조 힘빼기로 가든 노조와 타협하든 노동개혁은 대통령 프로젝트가 아니면 성공할 수 없다. 지금처럼 대통령이 고용노동부 주도의 연공급과 주52시간제 개편 중심의 노동개혁을 지켜보며 가끔 보고만 받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대통령이 팔 걷고 나서서 과감한 노동개혁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그래야 경제회생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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