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고(고금리·고물가·고유가)로 인한 민생 위기 극복을 위해 8월 15일 취임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사면을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실리고 있다.
윤 대통령이 사면 필요성을 수차례 밝힌 이명박 전 대통령과 정재계에서 요청이 잇따르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그리고 야당을 향한 협치 카드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의 사면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들이 광복절과 신년에 통상적으로 하는 수천 명 단위가 아니라 경제인과 생계범을 포함한 100만 명 이상의 대규모 사면을 단행해 민생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0일 “경제인과 정치인를 포함해 대규모 사면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법무부도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첫 사면의 범위와 대상을 정하기 위해 최근 전국 검찰청에 사면과 복권·감형 대상자 선정을 위한 공문을 보내는 등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상자가 선정되면 윤 대통령이 사면 범위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사면은 헌법 제79조에 명시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일반사면과 달리 특별사면은 사면법 제9조에 따라 대통령이 사면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친 자에 대해 특별사면과 특정한 자에 대한 감형 및 복권을 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6월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이십 몇 년간 수감 생활을 하게 하는 것은 과거의 전례에 비춰 안 맞지 않느냐”며 광복절 사면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에서는 최근까지 “사면과 관련해서는 언급할 수 없다”며 선을 긋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법무부가 사면을 위한 실무 작업에 돌입하면서 광복절 특별사면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윤 대통령 역시 20일 가능성을 시사했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취재진과 만난 윤 대통령은 사면에 대해 “과거부터 사면 문제에 대해서는 사전에 어떤 범위로 한다든지, 그런 것에 대해서 일절 언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고 답했다. 사면에 대해 언급 자체를 자제하던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범위’ 등을 말하면서 사면을 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정치권은 해석하고 있다.
대통령실과 법무부에 따르면 광복절 특별사면의 대상은 대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별사면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만큼 윤 대통령의 결단이 중요하다. 대통령실 관계자에 따르면 “대통령께서 최근 경제위기와 극복을 엄중하게 강조할 정도로 민생을 챙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면에서 70세 이상 고령 수형자, 임신·출산한 여성 수형자, 도로교통법 과실법 등 민생과 관련된 경미한 처벌 등에 대해 대대적인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1일 임기 중에 단행한 마지막 특별사면의 대상(98만 3051명)과 범위가 절제됐다는 점도 대규모 사면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2017년 말 165만 명, 2019년 말 약 171만 명을 사면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면이 이 전 대통령이 취임 첫해에 생계범 등 282만 명을 사면한 것과 규모가 맞먹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의 사면이 유력해지면서 이번 사면에 정치인과 경제인도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윤 대통령이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와 남재준·이병기 전 국정원장에 대한 사면을 단행할 수도 있다. 동시에 윤 대통령이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위해 인터넷 여론을 조작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된 김 전 지사도 사면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김 전 지사의 사면을 통해 인사청문회 정국과 원 구성 난항으로 대치 중인 야당에 협치의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위기 극복’을 내건 윤 대통령이 삼성전자를 이끄는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에서 “반도체는 국가 안보 자산”이라고 강조할 정도로 반도체 역량 강화에 힘쓰고 있다. 이 부회장은 재판장에 불려나가느라 해외 출장도 법무부 승인을 받아야 할 정도로 운신의 폭이 좁다. 현재 가석방 상태로 29일 형기가 끝나는 이 부회장은 논란 없이 경영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복권이 필요하다. 이에 윤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사면해 경제위기 극복에 힘을 실을 수도 있다. 연장선상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사면도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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