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잣집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외모를 가꾸는 여자, 트로피 와이프를 원하는 남자. 1990년대 한국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던 설정이다. '블랙의 신부'는 이런 설정을 현시대에 끌고 와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방송했다. 가슴에 와닿는 메시지 없는 구시대적 발상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블랙의 신부'(극본 이근영/연출 김정민)는 사랑이 아닌 조건을 거래하는 상류층 결혼정보회사 렉스에서 펼쳐지는 복수와 욕망의 스캔들을 그린다. 서혜승(김희선)은 남편의 불륜과 죽음을 겪은 뒤 친정엄마가 몰래 가입시킨 렉스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진유희(정유진)와 재회한다. 서혜승은 진유희에게 복수하기 위해 최상위 재벌의 신부가 되기로 결심한다.
작품은 첫 단추부터 시청자를 설득시키기 어렵다. 작품을 관통하는 이야기는 서혜승이 남편의 위해 복수한다는 점. 그러나 서혜승이 왜 이토록 간절하게 남편을 위해 복수를 해야 되는지가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못했다. 서혜승의 남편은 실제로 불륜을 저질렀고, 실제로 차명 계좌로 주식 투자를 했다. 명백히 잘못을 저지른 인물을 두둔하는 것도 모자라 그를 위해 복수를 한다는 설정부터 이해되지 않는다.
심지어 작품은 100부작 이상의 일일드라마를 8시간 동안 압축한 듯한 느낌을 준다. 남편의 불륜, 상처를 입은 여자의 복수, 뉘우침 없는 불륜 상대의 끊임없는 악행 등은 일일드라마에 익히 등장하는 소재다. 작품도 이런 일일드라마의 소재들을 적극 사용한다. 서혜승 남편은 진유희와 불륜을 저지르나 진유희에게 배신 당한 후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서혜승이 진유희에게 복수의 칼을 빼들자 진유희는 더 큰 악행을 저지른다. 때문에 어디선가 본듯한 기시감을 느끼기 충분하다.
우연한 만남이 연속되는 점은 개연성을 떨어트리는 요소다. 서헤승과 진유희가 우연히 렉스에서 마주치고, 서혜승이 우연히 이형주(이현욱)의 집에 과외 선생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그렇다. 이형주와 진유희가 이형주 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서혜승과 마주친 장면도 우연한 만남이다. 개연성 없이 우연히 만나 사건이 전개돼 시청자들의 피로도를 높인다.
평면적인 캐릭터도 작품의 매력을 감소시킨다. 선역과 서혜승, 차석진(박훈)과 악역 진유희로 반듯하게 나뉜 캐릭터들. 착한 인물이 착한 행동을 하고, 악한 인물이 악한 행동을 하기에 향후 전개가 예상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다음 장면과 대사가 예상대로 흘러가 궁금해지지 않는다.
결여된 젠더 감수성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부와 명예를 갖춘 여자들의 일생일대의 목표가 재벌과의 결혼이라는 설정, 이런 재벌남들은 트로피 와이프를 원한다는 대사가 현 세대 감수성과 맞지 않다. 또 여자가 결혼을 위해 갖춰야 될 최고의 덕목이 외모라고 꼽은 대사도 시대착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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