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21일 마침내 ‘빅스텝(0.5%포인트 금리 인상)’을 밟으며 긴축에 들어갔다. ECB의 금리 인상은 2011년 7월 이후 처음이다. 다만 이번 긴축 정책으로 인플레이션 억제와 경기 침체 회피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 감소로 인한 에너지 위기와 이에 따른 고물가, 고조되는 이탈리아 재정 위기 등 경고음이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ECB는 기준금리를 기존 0.00%에서 0.5%로 인상하고 -0.5%였던 예금금리는 0.00%로, 0.25%였던 한계대출금리는 0.75%로 올린다고 밝혔다. ECB는 성명에서 “기준금리 정상화와 관련해 이전 회의에서 예고한 것보다 더 큰 폭으로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추후 회의에서의 금리 추가 정상화도 적절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ECB는 지난달 통화정책회의에서 7월에 0.25%포인트를 올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인플레이션이 중기적으로 목표치인 2%로 되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ECB는 팬데믹긴급매입프로그램(PEPP)을 통해 사들인 증권의 재투자를 최소 2024년 말까지 유지하며 금리 인상 시점부터 자산매입프로그램(APP)으로 매입한 증권도 장기간에 걸쳐 재투자하겠다고 덧붙였다. 또 부채비율이 높은 유로존 국가들을 돕고 유로존 내 재정 분열을 막기 위한 새로운 채권매입계획인 TPI(Transmission Protection Instrument)도 공개했다.
ECB가 시장 전망치(0.25%포인트 인상)를 웃도는 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은 잡히지 않는 인플레이션에 보다 과감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올 1월 5.1%였던 유로존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6월 전년 동기 대비 8.6%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이번 금리 인상으로 물가가 잡힐지는 의문이다. 3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1.5%포인트나 금리를 올린 미국도 물가가 꺾이지 않으면서 지난달 CPI가 9.1%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겨우 0.5%포인트 인상으로 유럽의 고물가가 누그러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재정이 취약한 회원국 때문에 ECB의 운신 폭이 좁은 것도 문제다. 과거 기준금리를 1%로 유지하던 ECB는 2011년 들어 금리를 올렸지만 그리스가 촉발한 재정위기가 유로존으로 퍼지고 이후 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PIIGS)의 재정위기까지 우려되자 결국 두 차례 만에 인상을 중단했다. 지난해 말 기준 이탈리아의 국가부채 비율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150%로 재정위기에 몰렸던 2012년의 127%를 넘어선 상태다. 글로벌 금융 업체 ING의 카스텐 브제스키 거시경제책임자는 “지금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ECB의 인상 범위를 제한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이 유럽의 에너지 가격을 좌우하며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것도 문제다. 이날 러시아가 노르트스트림1을 재가동하며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재개했지만 클라우스 뮐러 독일 연방네트워크청장은 노르트스트림1을 통한 가스 공급량이 통상 수준의 30% 정도라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앞서 공급량이 절반 수준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시사한 만큼 유럽의 에너지 부족과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한 경기 침체도 우려되는데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중단될 경우 체코 등 취약국들이 최대 GDP의 6%에 달하는 타격을 받아 불황에 빠질 것으로 추정했다.
유례없는 폭염과 가뭄·산불도 유럽의 에너지난과 경제 부담을 증폭시키고 있다. 영국은 섭씨 40도의 전례 없는 폭염으로 학교 등이 폐쇄되고 기차·항공편도 취소되는 등 경제 활동에 차질을 빚고 있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의 경우 가뭄으로 라인강 수위가 급격히 낮아지면서 선박 운송에 차질을 빚고 있다. 키엘세계경제연구소는 1개월간 라인강 수위가 낮게 지속돼 독일의 산업 생산량이 약 1% 감소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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