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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리포트] 가치 동맹 올라탄 韓…“美에 準상설 통화 스와프 요구해야”

강태수 KAIST 금융전문대학원 초빙교수(전 한국은행 부총재보)

◆통화 가치 안정 위한 尹정부의 과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 환율안정 이끈 일등공신

달러 강세 13년來 최고…스와프 절실하지만

美 입장서도 국익 부합해야 성사될 수 있어

바이든, 가치 동맹으로 中·러 견제 속도전

韓은 막중한 손해 감수하면서도 IPEF 참여

3~5년 한시적 통화스와프라도 목소리 낼 때

강태수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초빙교수(전 한국은행 부총재보)




환율이 우리 경제의 최대 리스크로 떠올랐다. 15일 원·달러 환율이 13년 만에 최고치(1326원 10전)를 갈아치웠다. 환율 안정 요구가 빗발친다. 당국이 방어에 나섰다. 외환보유액이 6월 한 달에만 94억 달러 줄었다. 2008년 11월(-117억 달러) 이후 최대 규모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시장은 1400원을 기대한다. 환율이 뛰자 외국인이 자금을 빼고 있다. 올 들어 증시를 이탈한 외국인 자금이 160억 달러다. 한미 양국 간 기준금리가 역전되면 유출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 중단된 한미 간 통화 스와프 재개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배경이다.



통화 스와프 효과
외환위기 대비용 ‘마이너스 통장’이 중앙은행 간 통화 스와프다. 위기가 터지면 원화를 맡기고 달러화를 빌려 쓸 수 있다. 외환시장의 안정성이 그만큼 커진다. 한미 통화 스와프는 위기 상황을 단번에 진정시킨 위력을 보여준 바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된 2008년 9월 이후 넉 달 만에 외환보유액이 600억 달러 감소했다. ‘감축 속도’에 시장은 경악했다. 외환 당국은 2000억 달러를 손에 쥔 채 한 푼도 못 썼다. 외환보유액 2000억 달러가 마지노선이라며 전전긍긍했기 때문이다. 위기 상황을 한 방에 수습한 것은 한미 통화 스와프였다. 그해 10월 30일 통화 스와프 체결 뉴스에 금융시장 불안이 곧바로 해소됐다. 이날 하루 환율이 177원(12.4%) 하락했다. 자본 유출도 진정됐다. 실제 달러가 들어온 것은 한 달 후다. 2000억 달러 보유액보다 300억 달러 마이너스 통장 개설 뉴스가 주는 심리 안정 효과가 더 컸다. 2020년 3월도 주목할 사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국제 주가가 폭락했다. 원·달러 환율이 폭등했다. 그때도 환율을 하루 새 안정시킨 것은 통화 스와프 체결(6개월 기한 600억 달러) 뉴스였다. 3월 19일 1285원까지 치솟던 원·달러 환율이 20일 1245원으로 떨어졌다.


연준 통화스와프 체결 기준은 미국의 국익

통화 스와프는 우리가 원할 때 미국이 바로 응답하는 자판기가 아니다. 미국의 국익을 지키는 수단이다. 다른 국가에 아무 때나 베푸는 적선이 아니다. 2020년 3월 19일자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보도자료(Swap Lines FAQs)에 속내가 담겨 있다.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제금융시장에 달러화가 충분하지 못했다. 연준은 달러화 고갈 사태가 불러올 부작용을 염려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세계 무역신용장의 80% 이상이 달러화로 결제된다. 달러화 부족은 결국 국제무역의 위축을 불러와 미국은 물론 세계경제 전체에 부담을 준다.

더 큰 문제는 금융 손실 우려다. 한국에 달러화가 모자라면 미 투자은행이 한국 주식을 팔아도 돈 빼 갈 길이 막막해진다. 2021년 말 미국의 대외 금융자산 규모는 35조 2100 달러다. 국제금융시장에서 달러화가 바닥나 자금 회수가 어려워지면 미국 기업과 가계가 당하는 피해가 막대함을 시사한다. 2020년 3월 19일 미 연준이 발 빠르게 아홉 개 중앙은행(한국·멕시코·호주·덴마크·싱가포르·뉴질랜드·스웨덴·노르웨이·브라질)과 통화 스와프를 주도한 진짜 이유다. 우리가 통화 스와프 재협상을 요구해도 정작 미국이 필요성을 못 느끼면 성사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상설 통화 스와프는 만기는 물론 한도도 무제한이다. 당연히 미국은 국익을 더 깐깐히 따진다. 미 연준 상설 통화 스와프 대상 5개국(유로지역·영국·일본·캐나다·스위스)은 미국 금융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스위스 바젤의 금융안정위원회(FSB)는 매년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글로벌 대형 은행(Global Systemically Important Banks·G-SIBs)’ 30개를 발표한다. G-SIB는 파산 시 국제금융시장에 끼치는 피해가 엄청난 초대형 은행이다. 일반 은행보다 더 많은 자본금을 쌓도록 규제를 받는다. 제이피모건체이스은행은 추가로 자본금 2.5%를 더 적립해야 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SIB이기 때문이다. 30개 G-SIB 가운데 상설 통화 스와프 5개국 은행 수는 17개(EU 8, 일본 3, 영국 2, 스위스 2, 캐나다 2)다. 미국 8개를 합치면 상설 통화 스와프 국가 은행이 전체 G-SIB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G-SIB는 서로 얽히고설켜 국제금융 생태계를 지배한다. 어느 한 은행이라도 문제가 터지면 미국의 이익이 곧바로 치명상을 입는다. 아쉽지만 우리나라 은행 가운데 G-SIB는 한 개도 없다. 미국이 두려워할 정도에 미치지 못한다. 결국 상설 통화 스와프 성사 관건은 경제·금융 면에서의 미국 국익인 것이다.

새로운 미국 국익에 연대하는 한국, 통화 스와프 동맹 요구해야
그런데 최근 미국의 경제·금융 국익 목표와 추진 방식이 변하고 있다. 국익 추구의 전제 조건으로 ‘동맹 간 연대’를 앞세운다. 첫째, 조 바이든 행정부는 아시아·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새로운 경제 질서’ 구상을 제시했다. 공급망 재편, 디지털 경제 관련 국제 규범을 새롭게 논의하게 된다. 눈여겨볼 부분은 ‘가치를 공유’한 동맹국끼리 스크럼을 짜는 형태라는 점이다.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출범시킨 취지다. 중국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견제에도 출범국 지위로 IPEF에 참여했다. 미국에 동맹으로서 신의를 지켰다.
둘째, 최근 미국 국익의 핵심은 반도체다. “미국 산업 정책에서 반도체가 가장 최우선 순위다.”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 발언이다. 공급망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곧바로 미국 국가 안보, 일자리 등에 영향을 미친다. 2021년 6월 백악관이 발표한 보고서 결론이다. 미국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한국·일본·대만 등과의 ‘반도체 동맹’ 결성에서 찾고 있다. “8월까지 ‘칩4(Chip4) 동맹’ 참여 여부를 확정해 알려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구한 배경이다. 대만·일본은 칩4 동맹 참여 의사를 밝혔다. 우리는 고민 중이다. 중국의 어깃장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셋째, 대(對)러시아 제재도 미국의 중요 국익에 해당한다. 19~20일 방한한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러시아산 원유가격상한제’ 참여를 우리 정부에 요구했다. 가격상한제는 러시아산 원유에 대해 일정 가격 이상으로 입찰하지 않겠다는 소비국들의 약속이다. 우리 정부는 동참 의사로 화답했다. 하지만 향후 대러시아 관련 지정학적인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이처럼 미국이 한국에 들이미는 청구서는 대러시아 제재를 빼고 기존 5개 상설 통화 스와프국과는 관련 없는 것들이다. 결국 미국의 새로운 국익에 부합하는 답을 주는 나라는 동맹 한국인 것이다. 동맹 책무를 수행하다 보면 외환·금융시장이 일시적으로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예컨대 원화와 위안화는 동조화 경향이 크다. 미국이 중국에 금융 제재를 할 경우 부정적 파장이 원화에 즉시 미치는 구조다. 그렇다면 미국도 상응하는 카드(통화 스와프)로 혈맹 한국에 화답해야 하는 것 아닐까.


대안

미 연준의 상설 통화 스와프 가입 조건은 벽이 높다. 기축통화국이어야 하고 24시간 외환시장을 열어둬야 한다. 상설 통화 스와프 체결이 당장 어렵다면 호흡을 길게 가져가며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예컨대 3~5년 한시 통화 스와프 체결 후 만기 연장(roll-over)하는 방식은 어떨까. 연장이 순조롭다면 준(準)상설 통화 스와프가 된다. 한은이 중국과 캐나다·호주 등 8개 중앙은행과 운용 중인 시스템이다. 동시에 한미 외환 정책 대화 채널의 상설·정례화가 필요하다. 5월 21일 공동성명 합의를 좀 더 구체화시키는 것이다. 다행히 19일 한미 재무장관 회담은 “한미 양국이 필요시 외화 유동성 공급 장치 등 다양한 협력 방안을 실행할 여력이 있다는 데 인식을 공유했다”며 진일보한 결과물을 제시했다. 외환시장 문제가 심각해질 때 한미 간 핫 라인이 가동된다는 뜻으로 읽힌다. 활용하기에 따라 통화 스와프에 버금가는 안전판일 수 있다.

동맹이 아닌 중국과도 통화 스와프가 있는데 정작 혈맹인 미국과는 없다. 한미 동맹 정신에 비춰 어색하고 아쉬운 대목이다. 한미 간 통화 맞교환 약속은 위기 시 양국 간 공동 대응 의지를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는 것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의 신인도를 높이는 징표다. 위기 상황이 닥칠 때 필요한 것은 미국 달러화다. ‘달러화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유일한 글로벌 리저브 통화다.’ 영국 유력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의 깔끔한 설명이다. 미 연준과의 통화 스와프 논의 상대방은 중앙은행인 한은이다. 그렇다고 한은에만 맡겨둘 수 없다. 연준도 미 의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이다. 정부가 경제·안보·외교·국방 차원에서 접근할 과제다.




강태수 교수는…한은에서 33년 근무하면서 부총재보를 역임한 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또 미국 미주리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의 대표적인 국제 거시 금융 전문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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