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의 마음에 감동을 아로새긴 영화 ‘명량’은 우연히 아니었다. 이순신 장군의 용맹함에 매료된 김한민 감독의 진심이 녹아있었다. 7년 만에 세상에 나온 ‘한산: 용의 출현’도 마찬가지다. 역대 박스오피스 1위 ‘명량’의 후속작이라는 부담보다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의 감동을 나누는 것이 그의 진심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 개봉 기념 김한민 감독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한산’은 ‘명량’(2014)과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로 이어지는 이순신 3부작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으로, 임진왜란 초기인 1592년 7월 한산섬 앞바다에서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거느린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의 주력대를 무찌른 한산도대첩을 그린다.
“3부작이 완성되는 게 중요해요. 잘 완성됐으면 좋겠어요. 관객들이 세 작품을 개봉 순서대로 본 뒤 우리가 이순신 장군 같은 분을 역사 속 선조로 갖고 있는 것이 위안을 준다는 걸 느꼈으면 해요. 관객들이 알 수 없는 힘을 얻으면 좋겠어요. 자긍심이 됐든 이 시대에 우리가 잘 못 느끼는 연대감이든 유대감이든 느끼고 극장에서 나왔으면 해요.”
김 감독은 ‘명량’ 이전부터 3부작을 기획했다. 조금씩 성격이 다른 해전을 그리는 것이 목표다. ‘명량’ 이후 7년의 공백기 동안 수정에 수정을 거쳐 ‘한산’과 ‘노량’ 촬영을 모두 마쳤다. 마치 ‘명량’이 우격다짐으로 만들어가는 작업이었다면. ‘한산’과 ‘노량’ 작업 때는 차근차근 준비 과정을 거쳐 의미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 내야겠다는 여유가 생겼다.
“‘명량’ 때는 하지 못했던 콘티의 애니메이션화를 시도했어요. 예전에는 사전 시각화를 프리뷰 비주얼 작업으로 했어요. 일정 장면의 액션 장면 콘티를 동영상으로 짜는 것이죠. ‘한산’과 ‘노량’은 그걸 넘어서 버추얼 작업을 했어요. 완벽하게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70%의 성공률은 있었어요. 그게 없으면 해전을 구사할 수 없거든요. ‘명량’처럼 실제 바다 위에 배를 띄어놓고 하는 게 아니니까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트장에 전체 크로마키를 치고 조명을 LED로 깔고 촬영했어요. VFX와 미술까지 거기서 다 처리한 거예요.”
‘바다에서 촬영하지 않은 최초의 해전 영화’라는 시도는 스태프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명량’을 함께했던 스태프들 중에서는 ‘바닷바람 맞으면서 라이브 하게 찍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 52시간 근무제 체제에서 바다에서 두 편을 연달아 찍는 스케줄은 절대 불가능했다. 김 감독은 그럴수록 사전 시각화 작업에 공을 들이고 통제된 공간에서 해전 촬영하는 것을 강조했다.
“덕분에 코로나를 피해가는 상황이 됐죠.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고정 출연진들로만 했거든요. 그들을 철저하게 관리하면서 찍었기 때문에 코로나를 피해 갈 수 있었어요. 그렇다 하더라도 화면상 날 것의 느낌을 놓쳤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명량’보다 만족도가 높습니다.”
‘명량’ 이후 또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작품을 내놓는 것에 의아한 관객이 있을 수도 있다. 김 감독은 “‘왜 저 영화를 또 찍어?’라고 하는 지점에서 이의 제기가 안 나오도록 차별화를 뒀다”며 “3부작을 통해 이순신을 오롯이 더 표현하면 좋겠다 싶었다. 입체적으로 깊이 있게 ‘이순신이 저런 면이 있구나’ 생각하게 하려 했다”고 말했다.
‘명량’과 ‘한산’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 배우가 다르다는 것이다. 명량해전의 용장(勇將)이 배우 최민식을 통해 그려졌다면, 한산해전에서의 지장(智將)은 배우 박해일이 표현했다. 김 감독은 이순신 장군은 실존하는 인물이기에 배우가 바뀌어도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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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일을 통해 이순신 장군의 다른 면을 봐줬으면 했어요. 그런 지점에서 시나리오 개발하는 데 오래 걸렸죠. ‘명량’이 끝나고 이미 ‘한산’ 시나리오가 나왔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면밀하게 개발하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그러다 보니 7년이 훅 갔어요. ‘명량’의 대사 한 마디를 인용하면 천행(天幸)이었다고 생각해요. 코로나를 이겨 내면서 찍었으니까요.”
김 감독과 박해일은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2007) ‘최종병기 활’(2011)에 이어 ‘한산’으로 세 작품 째 호흡을 맞췄다. 그만큼 김 감독이 박해일이라는 배우를 잘 알기에 이순신 장군 역을 맡길 수 있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이 한산해전을 준비한 고뇌가 느껴졌다. 철저한 전략, 전술, 완벽한 진법에 대한 완성, 거북선의 운용, 적들을 넓은 바다로 유인하는 섬멸전, 적을 알아가면서 싸우는 정보전 등이 망라된 게 한산해전”이라며 “그런 이순신이라고 하면 굉장히 지략가일 수밖에 없고 적의 전략을 역이용하는 현명함과 담대함이 있다. 또 그 당시 나이대가 젋었다”고 설명했다.
“박해일을 통해서 외유내강의 이순신 장군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박해일이 유하게 보이잖아요. 장수로서 강한 인상은 아니지만 안에 갖고 있는 강직한 힘, 중심 이런 것들이 분명하게 느껴져요. 그런 인물로서 박해일이 적역이라고 생각했죠. 박해일이 처음에 의아하게 생각하더라고요. ‘전 장수 다운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은데요?’라면서요. 그래서 제가 ‘한산에서 이순신은 너의 모습이 더 맞는 것 같다’는 식의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술 마시면서 캐치볼 하면서 계속 이야기했죠. 박해일이 ‘그런 거라면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누군가는 계속 의문점을 품을 것이다. “왜 이순신인가”라고. 역사에 조예가 깊은 김 감독은 이순신 장군을 더 깊이 있게 조명할 필요가 있는 인물이라고 여겼다. 평소에도 난중일기를 끼고 살 정도로 이순신 장군에 대해 샅샅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울적할 때도, 잠이 안 올 때도 난중일기를 보면 위안이 돼요. 이순신 장군이 어려운 시기에 어렵게 생활을 하며 쓴 거라 그런지 이상하게 위안이 되더라고요. 이순신 장군의 매력을 넘어서 마력에 빠져든 게 있죠. 이순신 장군을 보면 다양한 면을 갖고 있어요. 인품적으로 올곧은 부분이 있는데 안목과 밸런스감이 있어요.”
“이상하게 거부감이 없어요. 제 고향이 순천이거든요. 어렸을 때 충무사에서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 영정 사진을 봤어요. 그때부터 이순신이라는 그림자가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명량’을 만들 때 제가 이순신을 그린다니까 지인이 ‘그걸 왜 하냐. 안 하면 안 되냐’고 하더라고요. 저는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냐’고 했죠. 잘못 건드리면 후폭풍이 있을 거라고 하던데 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무구한 우리의 역사를 소재로 한 상업 영화는 ‘국뽕’(국가와 히로뽕의 합성어로 맹목적으로 자국을 찬양하는 행태)이라는 말을 듣기 마련이다. 혹자는 ‘명량’을 국뽕 신파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이런 평가에 의연했다.
“진정성의 문제인 것 같아요. 제가 이순신 장군의 매력과 마력을 이야기했지만 진정성이라는 걸 함의하는 거죠. 그래서 3부작을 하는 거예요. 진정성이 무엇이냐. 관객에게 잘 와닿느냐 안 와닿느냐의 문제예요. ‘이순신 팔이’ ‘애국심 팔이’를 해서 흥행해 보겠다고 하면 국뽕 논란이 되는 거고, 진정성이 와닿게 엣지 있게 잘 표현하면 긍정적이고 호의적으로 가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국뽕 너머 국뽕이죠.”
“역사를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한산해전이 저런 식이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적당히 거북선으로, 적당히 학익진으로 승리한 관습적인 승리 해전이 아니거든요. ‘저런 고뇌와 위기감 속에서 벌어진 해전이었구나’라고 알게 됐으면 해요. 관객들이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의 소중함을 알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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