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내부 총질이나 하는 당 대표’로 지칭한 윤석열 대통령의 문자메시지 노출로 인한 파문이 커지고 있다.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들이 윤심을 받아 이 대표를 윤리위원회 징계로 내쳤다’는 이 대표 지지자들의 상황 인식에 힘을 싣는 정황이기 때문이다. 문자메시지를 노출한 장본인인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재차 사과했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동안 정치적 발언을 삼가온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했다”며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일각에서 윤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고 권 대표 대행도 모종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다음 주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 추이에 따라 대처 방식이 갈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27일 권 대표 대행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사적 문자 내용이 저의 부주의로 유출·공개돼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허리를 90도로 숙여 사과했다. 전날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렸으나 여론 악화가 심상치 않자 재차 사과한 것으로 보인다. 권 대표 대행은 ‘대통령이 추가로 말한 것은 없느냐’는 등 추가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전날 사과문에서 윤 대통령의 본심이 아니라는 뜻에서 “일부에서 회자되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으로 생각된다”는 말이 어불성설이라는 반응이 나오자 군더더기 없이 사과만 한 것으로 보인다.
발언 당사자인 윤 대통령은 마침 오전 외부 일정으로 도어스테핑을 건너뛰면서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기자들은 윤 대통령이 오전 11시께 대통령실로 복귀할 때 ‘어제 문자 관련해서 입장이 있느냐’고 물었으나 대답을 듣지 못했다.
전날에 이 사안을 거론하지 않았던 이 대표는 이날 정오께 페이스북을 통해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 대표는 “그 섬에서는 카메라 사라지면 눈 동그랗게 뜨고 윽박지르고, 카메라 들어오면 반달 눈웃음으로 악수하러 온다”며 “앞에서는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뒤에서는 정상배들에게서 개고기 받아 와서 판다”고 적었다. 사자성어 ‘양두구육’을 활용해 윤 대통령과 윤핵관들을 싸잡아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해당 문자에 대해 “대표도 오해는 하시지 않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 한 언론을 통해 “전혀 오해의 소지가 없이 명확하게 이해했다”고 쏘아붙였다. 윤 대통령의 문자메시지에서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읽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원 게시판 등에서는 이 대표 지지층을 중심으로 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이 대표와 가까운 청년 정치인들은 윤 대통령을 직접 도마에 올렸다. ‘친(親)이준석’인 김용태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은 YTN 라디오에서 “설사 당 대표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내부 총질이라고 인식했다는 것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반면 윤 대통령을 두둔하는 발언도 나왔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대통령도 사람인데 당 대표가 화학적 리더십으로 당을 이끌지 않고 계속 내부 불화만 야기시키는 것을 보고 어찌 속내를 계속 감출 수가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홍 시장 외에는 윤 대통령이 ‘할 만한 말을 했다’는 취지의 공개 발언은 나오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또 권 대표 대행의 경우 직을 계속 수행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9급 사적 채용’ 논란 관련 실언으로 사과한 지 7일 만에 또 사과하는 사태를 빚으며 당의 부담을 키웠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대통령 등 정치하는 사람들은 국민들한테 진정성이 있고 정직해야 하는데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국민들에게 확인시켜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권 대표 대행의 향후 처신은 대통령과 당의 지지율 추이에 달렸다는 분석이 있다. 지지율이 버텨주면 비판을 감수하고 이대로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만약 다음 주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하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해 조기 전당대회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