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로 시행 2년을 맞는 임대차법이 ‘임차인 보호’라는 당초 입법 취지가 무색하게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을 가중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전월세 가격 급등과 함께 금리 인상, 집주인의 보유세 부담 전가까지 더해지며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하는 한편 시장 논리를 외면한 채 도입된 계약갱신청구권제가 유명무실해지면서 임차인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29일 서울경제가 부동산R114에 의뢰해 전월세신고제가 시행된 최근 1년간 서울 아파트의 전세 거래 현황을 분석한 결과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고 계약을 갱신한 임차인들의 전세 보증금 증가율이 적게는 종전 보증금의 5%를 조금 웃도는 수준에서부터 많게는 10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약갱신청구권제는 보증금 상승률을 종전 거래의 5% 이내로 정하고 있다.
이는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셋값이 급등한 가운데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기 여의찮았던 임차인들이 집주인과 합의해 시세에 맞춰 전세 보증금을 올려주고 계약을 연장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임대차법의 골자인 계약갱신청구권제가 사실상 시장에서 외면받았을 뿐 아니라 임대차법으로 야기된 전셋값 급등이 임차인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 것으로 분석된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금리 인상에다 종합부동산세·재산세 등 세 부담 급증에 부담을 느낀 집주인들이 계약갱신청구권제까지 도입돼 전셋값을 제대로 올리지 못하자 4년(2+2) 치 인상분을 한꺼번에 반영해 신규 계약을 체결하는 현상이 벌어졌는데 이 영향이 갱신 계약에까지 번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개별 단지 사례를 보면 서울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면적 94.49㎡에서 최근 1년 사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고 갱신된 전세 거래의 종전 보증금은 15억 2000만 원이었는데 갱신 보증금 평균은 22억 6000만 원으로 48.7% 올랐다.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3단지 전용 114.588㎡는 전세 보증금이 6억 5000만 원에서 11억 5000만 원으로 76.9% 뛰었고 양천구 목동 목동신시가지3단지 95.03㎡도 5억 7500만 원에서 9억 7500만 원으로 69.6% 상승했다. 노원구 공릉동 현대성우아파트 84.96㎡의 경우 기존 2억 원에서 4억 원으로 무려 두 배 상승했다. 성북구 길음동 길음뉴타운5단지 84.96㎡는 4억 8000만 원에서 6억 8000만 원으로 41.7% 상승했다.
같은 단지 내에서도 계약 건마다 전세 보증금 상승률은 천차만별로 나타났다. 갱신된 거래 가운데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보증금을 5% 이내로 올린 거래뿐 아니라 집주인과 합의를 통해 5%를 조금 웃도는 수준에서 보증금을 올려준 임차인도 있었다. 이중·삼중 가격이 나타나며 임대차 시장에서 대혼란이 발생한 것이다.
전셋값의 빠른 급등은 결국 월세화를 불러왔다. 이날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주택 전월세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반기 누계 기준 51.6%를 기록했다.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선 것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는 9.6%포인트나 올랐다. 개정된 임대차법이 시행되기 이전인 2018~2020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40% 안팎으로 안정적이었던 월세 비중은 2021년 상반기 42%, 하반기 45.1%로 점차 올랐고 결국 올 상반기 들어서는 51.6%로 결국 절반을 넘어섰다.
서울 아파트 전체의 전월세 가격도 급등했다. KB 월간 통계를 보면 임대차법 시행 이후 2년(2020년 8월~2022년 7월)간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은 총 22.5%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임대차법 시행 이전 2년(2018년 8월~2020년 7월) 상승률이 3.5%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세 가격 상승률이 6.5배가 된 셈이다.
월세 가격도 마찬가지다. 한국부동산원 서울 아파트 월세통합가격지수는 임대차법 시행 전 2년(2018년 8월~2020년 6월) 상승률은 0.07%에 그쳤지만 시행 후 2년(2020년 8월~2022년 6월)간은 4.0%나 올랐다.
임대차법은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도 키웠다. 올 상반기(1~6월) 대한법률구조공단 주택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임대차 계약 갱신·종료’ 관련 분쟁은 132건으로 임대차 2법 시행 전인 2019년 36건과 비교해 3.7배 늘어났다. 연간 기준으로 분쟁은 2019년 43건, 2020년 122건, 2021년 307건으로 매년 증가세다.
이는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려는 세입자와 집을 비워 달라는 집주인 간 갈등이 늘어난 영향으로 분석된다. 세입자가 집을 비우지 않을 경우에는 명도 소송으로 이어지는 등 사회적 비용이 증가한다. 보증금 증액을 둘러싼 갈등도 증가하고 있다. 차임·보증금 증감 관련 분쟁은 올 상반기 30건 접수됐는데 2019년 상반기(4건) 대비 7배에 달하는 수치다. 해당 분쟁 역시 연간 기준 2019년 5건, 2020년 33건, 2021년 54건으로 증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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