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시장에서 5개월 연속 자금이 빠져나가 총 수십조 원이 이탈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화 ‘곳간’이 비어가는 신흥국들의 ‘도미노 디폴트(채무 불이행)’ 우려도 점차 커지고 있다.
30일(현지 시간) 국제금융연구소(IIF)에 따르면 외국인투자가들이 올해 3월부터 7월까지 5개월 연속 총 380억 달러(약 50조 원) 규모의 신흥국 주식·채권을 순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흥국 시장에서 5개월 내리 ‘팔자’가 이어진 것은 2005년 이후 처음이다. 순매도 규모는 이달 들어서만 105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유럽중앙은행(ECB) 등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잇따른 금리 인상 때문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설명했다. 선진국들이 경기 침체를 걱정해야 할 단계로 넘어왔지만 신흥국은 이에 따른 ‘반사이익’을 누릴 형편이 못 된다는 분석이다. JP모건에 따르면 현재 21개 신흥국의 국채금리가 미국 국채금리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그만큼 신흥국 채권 투자에 대한 위험이 커졌다는 의미다. IIF 소속 이코노미스트인 조너선 포천 바르가스는 “글로벌 경제 상황이 신흥국에 유리하게 바뀔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매우 낮다”며 “신흥국 투자 심리는 극도로 위축된 상태”라고 진단했다. 금융 컨설팅 업체 코페이의 카르티크 산카란 수석전략가도 “신흥국 시장은 최악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경제가 뚜렷한 회복세로 돌아서지 못하는 점도 신흥 시장에는 악재다. 애덤 울프 앱솔루트스트래티지리서치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최대 신흥 시장인 중국의 부진이 수출 상대 및 투자금 조달원으로 중국에 의존하는 다른 개도국들의 회복을 제한하는 요인이라고 전했다.
대규모 자금 유출에 따른 재정 악화로 5월 스리랑카에 이어 신흥국들이 연쇄 디폴트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고조되고 있다. 아프리카 가나의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97억 달러에서 6월 말 기준 77억 달러로 뚝 떨어졌고 파키스탄의 외환보유액 역시 1월 166억 달러에서 이달 중순 93억 달러로 70억 달러나 급감했다. 80%를 넘는 인플레이션율에도 경기 진작을 위해 금리 인상을 거부하고 있는 튀르키예 역시 디폴트 ‘고위험국’으로 분류된다고 FT는 분석했다. 투자사 애버딘의 케빈 댈리 투자디렉터는 “신흥국들의 외환보유액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급속히 악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