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러시아에 대한 원유 제재를 일부 완화했다. 생산량이 세계 3위인 러시아 원유 공급을 제한하며 발생한 국제유가 급등이 유럽 전역을 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몰아 넣자 결국 한 발 물러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1일(현지 시간) 유럽연합(EU)이 최근 러시아 원유 관련 제재를 일부 느슨하게 했다고 보도했다. EU는 러시아산 원유를 운송하는 선박이 해상 보험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재 조치를 지난 6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FT는 “EU 역외로 수출되는 러시아산 원유를 실은 선박의 경우 제재에서 예외로 인정돼 보험에 들 수 있도록 규정이 수정됐다”고 설명했다.
EU가 지난 5월 러시아산 원유에 내린 수입 금지(금수) 조치에 따라 역내로 들어오는 것은 막되, EU 이외 다른 지역으로 러시아산 원유가 공급되는 것은 차단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EU 집행위원회 측도 “제 3국으로 러시아 원유나 석유제품을 운송·판매하는 유럽 기업은 로스네프트 등 러시아 국영 석유사와 거래할 수 있다”고 FT에 전했다.
유럽의 이번 결정은 러시아 원유 제재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관측된다. 7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8.9% 상승할 것으로 예측됐는데, 이는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래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특히 에너지 물가가 1년 전보다 40% 가까이 치솟아 CPI 급등을 부추겼다.
즉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로 유가가 ‘고공 행진’을 벌이고 있는 만큼 금수조치를 내린 미국과 유럽 이외의 지역에는 러시아산 원유가 유입되도록 해 유가를 끌어내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이 제재를 일부 느슨하게 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 실효성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유럽은 러시아산 원유 금수조치를 단행하면서도 오는 12월5일까지 이미 맺어진 계약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하기로 해 ‘제재가 느슨하다’는 비판이 인 바 있다. 영국의 경우 금수조치에 동참하되, 조치 적용을 내년부터 하겠다는 입장이다. 해상 분야 전문 로펌인 HFW의 사라 헌트 변호사는 “바뀐 EU 제재는 유럽 기업들이 사실상 마음 놓고 러시아산 원유를 취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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