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르면 2025년부터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만 5세로 1년 낮추는 내용의 학제 개편안을 추진하기로 한 가운데 학부모와 교육계의 반발이 갈수록 확산하고 있다. 교육부는 ‘출발선의 평등’이라고 설명했지만 5세 아동을 지식 중심 교육이 진행되는 학교에 보내는 것은 유아 발달 단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대통령 공약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정과제에도 포함되지 않은 정책을 사회적 합의 등 제대로 된 의견 수렴도 없이 불쑥 발표한 데 대해 ‘졸속 행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예상보다 후폭풍이 큰 데다 초중등교육법 개정이라는 문턱도 넘어야 해 추진 과정에서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1일 교육계에 따르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교사노동조합연맹·한국유아교육협회 등 40개 교육단체는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를 구성해 이날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를 열고 ‘만5세 유아 초등 취학’ 철회를 촉구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와 한국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한국유아교육행정협의회 역시 ‘초등 취학연령 하향 반대’ 공동요구서를 대통령실, 교육부, 국회 교육위원회에 전달했다. 교총이 이날 전국 유초중고 교원 1만 66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에서는 무려 95%의 교원이 만 5세 초등 입학에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달 29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1년 낮추는 학제 개편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의 새 정부 업무계획을 보고했다. 교육부가 내건 추진 배경은 아이들을 조기에 공교육으로 편입시켜 ‘출발선상에서의 교육 격차를 조기에 해소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교육계는 유아기 발달 특성상 만 5세 아이의 취학은 비교육적이라고 주장한다. 범국민연대는 “놀이 중심 활동을 해야 하는 유아들을 교실이라는 네모난 공간의 책상 앞에 앉히는 것은 유아기 특성에 맞지 않다”며 “만 5세 유아에게 15개월은 매우 긴 시간이며 하루하루 달라지는 유아기에 15개월 차이는 성장에서 매우 큰 격차를 만들게 된다”고 지적했다. 만 5세의 지적·신체적 발달 수준이 과거에 비해 높아졌다는 교육계 일각의 의견에 대해서도 교총은 “유아 시기 1~2개월 차이만 나도 발달 격차가 큰데 단순히 ‘요즘 애들이 커지고 똑똑해졌다’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더욱이 영유아(0~5세) 단계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합치는 ‘유보통합’을 추진하겠다면서 대선 공약과 인수위 국정과제에도 없던 취학연령 하향 정책을 불쑥 꺼내든 것에 대해 졸속 행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과거 정부에서 추진됐다 수차례 좌초됐던 정책임에도 구체적인 로드맵은커녕 시도교육청이나 학부모·교사 등 교육 주체의 의견 수렴조차 없이 추진됐다는 점에서 교육계의 분노가 크다. 유보통합이 쉽지 않으니 만 5세만이라도 초등학교라는 공교육 체제에 편입시키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문미옥 서울여대 아동학과 교수(한국유아교육대표자연대 의장)는 “초등학교 입학자가 늘어서 경쟁이 심화된다는 우려는 논의할 필요조차 없고 본질은 만 5세 아동에게 지식 중심 교육을 시키는 것이 온당하냐는 것”이라며 “영유아기는 놀이 중심 교육으로 발달해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유보통합을 5세, 4세, 3세 순으로 1개년씩 순차적으로 하면서 취학연령 하향도 검토하겠다고 했으면 정책의 진정성을 느꼈을 것”이라며 “유아공교육을 완성하는 것이 선결 과제이지 교사와 학부모가 대부분 반대하는 취학연령 하향은 교육적으로 맞지도 않을뿐더러 실현 가능하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교육계와 학부모의 반발이 커지자 한덕수 국무총리는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다양한 교육 수요자의 의견을 청취하라고 지시하며 진화에 나섰다. 교육부는 지속적으로 대국민 설문조사와 공청회 등을 진행해 내년쯤 시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시작부터 반발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과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학제 개편은 초중등교육법 등 개정을 거쳐야 하는데 여소야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고 있는 만큼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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