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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 정부 가격 규제에 민간끼리 분쟁 ‘허송’…둔촌 재건축 예고된 비극

◆공사 중단 ‘둔촌 사태’

분양가 갈등이 공사비 분쟁으로 전이, 조합 내분 촉발

조합, 4조원대 빚더미에 고금리·인플레 덮쳐 설상가상

공사 재개 물꼬 텄지만 손실 검증·분담금 증액 ‘불씨’

민간중심 공급 확대 시험대…분양가상한제 출구전략을

단일 규모로는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사업이 4월 15일부터 공사가 전면 중단된 채 100일 넘도록 표류하고 있다. 시공 회사 컨소시엄이 아파트 외벽에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연합뉴스




공사 현장 출입문은 굳게 닫혔다. 22층까지 올라간 아파트 골조 사이로 가동을 멈춘 타워크레인만 무심한 듯 솟아 있었다. 키보다 높은 외부 가림막과 짓다 만 아파트 외벽에 걸린 현수막에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빨간 글씨가 사뭇 위압적이다. 지난달 30일 찾은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은 간간이 차 소리만 들릴 뿐 적막감이 감돌고 있었다. 국내 최대 재건축 현장인 이곳은 조합과 시공 회사의 공사비 갈등 등으로 올 4월 15일부터 100일 넘게 공사가 멈췄다. 순탄하게 진행됐더라면 내년 이맘때 준공되겠지만 언제 입주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시공 회사와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던 조합 집행부가 지난달 28일 물러나 새 국면을 맞았으나 정상화 궤도에 안착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조합원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공사 현장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만난 조합원 김 모(65) 씨는 “전세금 대출 한 달 이자만도 100만 원이 넘는데 5년째 전세로 떠돌고 있다”며 “공사 중단이 장기화할 것 같아 지분을 팔지 말지 상담하러 왔다”고 말했다. 조합원 입주권은 중도 처분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지만 1가구 1주택자이고 10년 보유, 5년 거주 요건이 충족되면 전매가 가능하다. 그는 “집행부가 바뀐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며 “조합원 부담만 늘어나지 않겠느냐”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주변 부동산 중개업계는 사업 정상화가 늦어지면 조합원 매물이 쏟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도시·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재건축 사업은 착공 3년이 넘으면 조합원 입주권 매매 금지가 풀리는데 이 시점이 12월 4일부터다. 전용 84㎡(34평형)의 입주권 시세는 한때 20억 원을 웃돌다 최근 17억~18억 원 선으로 떨어졌다.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오랫동안 서울 지역 내 집 마련 수요자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새로 짓는 아파트는 83개 동, 1만 2032가구로 가히 미니 신도시급이다. 일반 분양 물량만도 자그마치 4786가구에 달한다. 서울의 한 해 아파트 입주 물량과 신규 분양 물량이 최근 5년 평균 각각 4만 가구와 1만 가구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새 단지의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입주 지연이 장기화하면 매매와 전월세 시장에 연쇄적으로 충격을 줄 수 있음은 물론이다. 둔촌 사태를 단순히 내부 갈등으로만 치부하지 못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장기간 전월셋집을 떠도는 조합원 가족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일까. 표면적인 이유는 조합과 건설사 컨소시엄(시공단)의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갈등에 있다. 조합 측이 증액 계약이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하자 시공단이 공사 올스톱으로 맞대응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정부가 강남 ‘반값 로또 아파트’를 만들겠다며 분양 가격을 통제하면서 예고됐던 비극으로, 누적된 분양가 갈등이 공사비 분쟁으로 옮겨붙어 표면화했다. 재건축 사업은 일반 분양가를 억누르는 만큼 조합원의 분담금이 늘어난다. 정부의 가격 규제에 민간끼리 싸우게 된 셈이다. 주택 정비 업계 관계자는 “애초 분양가 갈등이 없이 일반 분양을 끝냈더라면 지금의 사태는 빚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공사비 갈등은 비일비재한데도 둔촌 재건축에서 유독 도드라진 것은 조합원 수가 너무 많아 한목소리를 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최대 난제인 조합원 지분 평가(관리처분계획)를 마치면 7부 능선을, 철거를 완료하고 착공이 이뤄지면 9부 능선을 넘은 것으로 평가된다. 다음 단계인 일반 분양을 마치면 입주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합은 정상으로 가는 깔딱고개 앞에서 분양가 통제라는 복병을 만났다. 조합은 2019년 말 총회에서 3.3㎡(평)당 분양가를 3550만 원으로 책정하고 사업 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분양가 심사를 맡고 있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제동을 걸었다. HUG가 제시한 분양가는 2978만 원. 괴리는 컸다. 당시 “조합원 이익을 빼앗아 왜 로또 청약자에게 주느냐”는 조합원의 불만에 일반 분양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모든 일정이 꼬여버렸다. 선분양과 후분양을 둘러싼 조합 내분과 자금난, 공사비 갈등 등 온갖 악재가 덮쳤다.



조합 측이 HUG의 분양가를 수용하면 될 텐데, 과욕을 부린 게 화근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조합원 추가 비용이 최소 1억 원 이상 증가하는 탓에 조기 분양하자는 현실론은 설 땅을 잃었다. 당시 조합 집행부였던 한 조합원은 “정부는 2019년 7월 분양가상한제 도입을 발표한 후 시행을 1년 뒤로 미뤘다”며 “HUG는 이 유예 기간을 지렛대 삼아 평당 분양가 3000만 원 이하를 고집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둔촌주공아파트 철거 작업이 한창이던 2019년 8월 정부의 분양가상한제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아파트 입구에 걸려 있다. 연합뉴스


둔촌 사태는 조합 집행부의 사퇴로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집행부 해임을 추진해온 ‘정상화위원회’가 협상의 전권을 위임받았다. 강동구청의 중재 결과다. 정상위 관계자는 “이르면 9월 중 조합 총회를 개최해 새 집행부 선임과 공사 재개 관련 안건을 상정할 것”이라며 “11월 공사 재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행부 교체가 공사 재개의 물꼬를 텄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1차 관건은 지난달 초 서울시 중재안을 총회에서 추인받는 것이다. 중재안은 문제가 된 증액 공사비 계약이 적정한지, 일반 분양 지연과 설계 변경, 공사 중단에 따른 손실액이 얼마나 되는지 등을 한국부동산원의 감정을 거친다는 게 골자다. 공사 재개 관련 안건이 총회를 통과해도 분담금 부담이 늘어날 조합원을 설득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과제다. 서울시는 둔촌 사태가 장기화하면 조합원 동의를 전제로 서울주택도시공사(SH)를 사업 대행자로 투입할 것임을 예고한 바 있다. 시간을 끌수록 조합과 시공사 모두 엄청난 손실을 입기 때문이다.

조합 또는 조합원이 갚아야 할 빚은 공사 대금 1조 7000억 원과 사업비 대출금 7000억 원, 이주비 대출금 1조 4000억 원 등 4조 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연리 4%만 해도 연간 이자 비용이 1600억 원에 이른다. 여기에 공사 중단 비용이 추가된다. 장비 대여료와 현장 관리비 등이 해당한다. 조합 안팎에서는 ‘월 최소 300억 원씩 앉은자리에서 까먹는다’는 말이 나온다. 가뜩이나 인플레이션과 고금리까지 덮쳐 설상가상이다.

전문가들은 “둔촌 사태를 계기로 분양가상한제 출구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정부가 이달 중 발표할 ‘250만 가구+α’ 공급 대책을 주목하고 있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총량적 공급량보다 중요한 것은 서울 지역 주택 정비 사업 활성화에 있다”며 “경기 둔화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한여름 겨울옷’ 같은 분양가 규제의 출구부터 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분양가상한제는 민간 중심의 공급 확대를 내건 새 정부의 주택정책 기조와도 어긋나고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와 맞물린 중복 규제이기도 하다. 두성규 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분양가 규제가 공급 위축의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둔촌 사태가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이대로 가면 고금리와 자재 가격 및 인건비 상승으로 제2, 제3의 둔촌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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