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할 수 없는 전개와 신선한 공포로 전 세계 관객을 매료시켰던 조던 필 감독이 신작 <놉>으로 돌아온다. 오는 17일 국내 개봉을 앞둔 가운데 먼저 공개된 북미에서는 압도적인 박스오피스 1위로 흥행을 시작했단 소식도 전해졌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모양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예측불가, 독창적 스토리라는 극찬과 함께 워낙 보안을 철저히 한 탓에 국내 영화 마케터에게도 내용을 '놉코멘트' 했다, 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이쯤 되면 기대를 안 할 수 없다.
영화 <놉>에는 익숙한 얼굴이 여럿 등장한다. 조던 필 감독을 성공한 감독으로 이끈 그의 첫 작품 <겟 아웃> 주연이자, 2021년 아카데미 남우 조연상 수상자 다니엘 칼루야가 다시 한 번 조던 필 감독과 합을 맞췄다. 같은 해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도 출연한다. 감독부터 배우까지 지난해 아카데미 주역들이 만난데다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테넷> 등을 찍은 호이트 반 호이테마 촬영감독이 합류해 눈길을 끈다. 내용은 모르긴 몰라도, 영화 <놉>이 'SF 공포물'이라는 점이 호이테마 감독의 합류를 설명할 수 있는 이유이겠다.
조던 필 감독의 전작 <겟 아웃>(2017)과 <어스>(2019)는 사실 호불호가 나뉘는 편이다. <겟 아웃>만 하더라도 흑인 인종차별에 대한 메시지가 강한 탓에 동양인인 관객들로서는 공감이 덜 됐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메시지를 빼고 보면 플롯은 사실 단순한 편이다. 영화는 흑인 남자가 백인 여자친구 집에 초대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골자다. 그 자체로 '공포'일 수 있는데 감독은 영리하게 일상 공포에 비일상적 공포를 더한다.
마침내 공포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는 반전이 영화의 핵심이다. 영화 초반 백인 경찰이 흑인인 주인공에게 부당하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장면이라든지, 백인 가정에 흑인 가사도우미라는 '클리셰'한 설정은 영화 중반 큰 반전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우월한 피지컬을 지닌 흑인을 '동경'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마음대로 착취해버리는 백인들. 그리고 백인들 틈에 끼어 그들과 똑같이 행세하는 동양인까지(정확히는 일본인이다). 낡지 않은 생생한 현실 풍자가 인상적이다.
다만 백인 여자친구 아버지인 아미티지 씨가 흑인 주인공이 자동차 사고로 치여 죽였다는 사슴을 두고 'black buck(인디아영양)'들은 죽어도 이상할 게 없다는 투로 말하는 부분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발언이라는 점을 눈치채기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최면술에 능한 아미티지 부인의 최면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주인공이 소파에서 뜯은 솜을 활용하는 장면도, 과거 흑인들이 목화 농업에 착취당한 역사를 비트는 장면이었다. 이밖에도 영화 속 백인들의 끔찍한 만행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흑인 피해자 로건이 말투에서부터 백인을 흉내낸다는 점도 우리로서는 쉽게 포착하기 어렵다.
메시지가 강한 영화로도 유명하지만 <겟 아웃>은 공포영화 그 자체로도 손색이 없다. 다시 봐도 깜짝 놀라는 장면이 적지 않다. 여전히 남아있는 흑인을 둘러싼 인종차별이란 현실을 비틀며 공포로 승화시켰다는 점이 신선한 시도로 받아들여졌다. 감독 본인이 코미디언 출신인지라 공포 영화지만 코미디 요소가 빠지지 않았다는 점도 흥행에 도움이 된 듯 하다.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사회적 메시지와 현실 풍자 요소들, 곱씹어볼 수록 의미가 더해지는 은유와 상징들이 조던 필 영화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덕분에 <겟 아웃>은 공개된 해 미 아카데미 시상식 4개 부문에 올랐고 감독은 각본상을 거머쥐었다. 특이하게도 한국에서 영화가 입소문을 탄 덕분에 조던 필 감독은 아직도 본인 트위터에 자신을 '조동필'이라고 한글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어스>는 <겟 아웃>보다 훨씬 복잡한 설정이다. 더욱 확장된 사회 내 차별적 시선에 대해 꼬집고 있다. 전작이 흑인과 백인 사이 인종차별에 대해 다루고 있다면 <어스>에서는 자본주의와 이념 따위에 의해 극단으로 대립하고 있는 아비규환의 사회를 직접적으로 꼬집는다. 다만 영화 제목 'Us'가 사실 '미국(United States)'를 상징한다는 것과 '복제인간'이라는 소재가 사실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현실 속 인간들이라는 해석 없이는 스토리를 따라가기 버거울 수 있다. 이 때문에 역시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그래도 전작의 명성에 먹칠하지 않을만큼 다양한 상징과 은유, 복선으로 가득찬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사실 조던 필 감독이 각본이나 제작에 참여한 영화가 몇 편 더 있는데 국내에서는 흥행에 참패한 바 있다(예를 들어, 캔디맨(2021)). 조던 필 감독이 참여했다고 모두 흥행에 성공한다는 법은 없다. 그래도 영화를 보면 볼 수록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 공포의 끝에는 더욱 공포스러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 조던 필 감독 영화의 매력이자 핵심이지 않나 싶다.
복잡하게 따져보지 않더라도 두 작품 모두 걸출한 공포 영화로서 여름에 보기 딱이다. 영화마다 등장한다는 조던 필 감독의 목소리 특별 출연도 찾아보는 재미가 있겠다. 곧 국내 관객에 공개될 조던 필 감독의 신작은 우리에게 또 어떤 놀라움을 전해줄 지, 기대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시식평 - 조동필 감독님, ‘겟 아웃’ 2편은 언제 나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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