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실용적인 파트너십이 인도태평양 지역 개발도상국들 사이에서 또 다른 모범 사례를 만들고 이 지역의 다자간 경제협력 효율성을 높일 것입니다.”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아시아연구센터 회장이 2일 서울경제와의 창간 특별 인터뷰에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열쇠는 한국”이라고 단언하며 한미 동맹의 역할 확대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미국을 대표하는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의 공동 설립자 퓰너 회장은 미 행정부와 의회를 아우르는 국제정치 권위자로서 수십 년간 미국 외교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 ‘친한파’ 인사로 올 4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만나 다양한 조언을 했던 그는 윤 대통령이 제시한 ‘글로벌 중추 국가’라는 목표를 이루려면 미국이 인도태평양 일대에서 구축하려는 가치 중심 경제 생태계에서 한국이 중추적 역할을 맡아야 하며 이를 위해 미중 갈등의 한복판에 있는 대만과 한국이 다양한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미 FTA 10년 노하우, 美 인·태 전략 이끌 자산
퓰너 회장은 “한국과 미국의 경제 관계는 지난 10년 동안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에 의해 확실히 자리 잡았다”면서 “이 관계는 같은 이상, 끈끈한 인적 유대, 양국 글로벌 기업 간의 협력으로 뒷받침된다”고 말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증진하기 위해 미국이 한국과 전략적으로 첨단 기술 동맹을 맺으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아시아에서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가 한국과 싱가포르 두 곳에 불과한 만큼 한미 FTA에서 축적된 노하우를 IPEF로 확대해나가야 한다는 미국 측의 갈증도 크다는 뜻이다.
퓰너 회장은 IPEF로 대표되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단순히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한국이 이에 대해 중장기적으로 대비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바이든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의 우선 순위와 많은 이니셔티브를 수용하고 있다”면서 “이는 이 전략이 미국에서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그는 한미 동맹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 미국의 ‘진정한 친구’인 대만과 한국 간에 실용적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앞서 두 번의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문구가 적시된 점을 두고 “한미 동맹은 지금까지 많은 것을 이뤄왔으나 앞으로도 함께 나아갈 더 많은 영역들이 있다”면서 “미국이 촉진하는 한국과 대만의 파트너십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이 중국과 멀어진 이유에 주목해야
한미 간의 이 같은 관계 심화는 한국의 대중 외교에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퓰너 회장은 자신이 누구보다 한국의 입장을 잘 알고 있으며 한때는 그 역시 중국 개혁 개방의 적극적인 지지자였음을 강조했다. 실제 퓰너 회장은 20년 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지지하기도 했다.
퓰너 회장은 그러나 지금의 중국이 점점 더 도전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전통적으로 중국에 우호적이던 유럽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통해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지목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퓰너 회장은 2020년 체코 주재 중국 대사관이 체코 상원 의장의 대만 방문과 관련해 체코 기업들을 위협한 것을 비롯, 대만 대표처 개설을 허용한 리투아니아에 중국이 무역 보복 등을 강행한 것 등을 거론하면서 “중국은 유럽에서 이른바 ‘늑대 외교’를 배가시키고 있다. 우리는 이 같은 행동에 함께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중 갈등이 심화한 것이 단순히 트럼프 행정부 때의 거친 외교 때문만이 아니라 장기간 누적된 문제라는 점도 언급했다. 국유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시장 접근성을 차단하며 지적재산권을 도난하는 중국의 행위들이 이미 미중 관계 테이블에 산적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은 오랜 현안들을 해결하는 한편 강경하고 미래 지향적인 대중 경제 노선을 확립하자는 초당적 합의에 도달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중국과 대화하고 교류할 기회를 계속 모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도 덧붙였다.
한미일 ‘안보’ 협력 만큼은 빛샐틈 없어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갑작스런 죽음에 따른 일본의 정세 변화도 퓰너 회장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주목하는 분야 중 하나다. 그는 1년 안에 ‘아베의 유산’들이 일본 정치에서 본격적으로 구현될 것으로 보고 있다.
퓰너 회장은 “1년 안에 일본의 개헌 제안이 이뤄질 수 있으며 군대를 보유할 권리를 공식화하는 등의 문제는 개헌 과정에서 도입하기가 쉬울 수 있다”면서 “이는 한미 양국이 긴밀히 협의하고 소통하며 다뤄야 할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부침이 심한 한미일 삼각 협력과 관련해 퓰너 회장은 “안보에 있어서만큼은 빈틈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한국과 일본이라는 중요한 동맹국 중 어느 쪽 편을 드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 아무런 이득이 없다”면서 “(미국은) 안보 문제에 관해서만은 함께 일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북핵 문제 대응에 있어 공고한 한미일 안보 협력은 필수다. 퓰너 회장은 “미국은 분명하게 확장 억제 약속을 이행해야 하고 한국은 북측 위협에 대비하는 데 있어 보다 강력한 3국 공조를 가능하게 하는 한일 관계 개선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에드윈 퓰너는 누구
에드윈 퓰너 회장은 1973년 헤리티지재단을 세운 공동 설립자로 1977년부터 2013년까지 이사장을 지내며 미국을 대표하는 싱크탱크로 키워냈다. 미국 보수의 ‘두뇌’로서 특히 공화당 정부의 정책 수립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헤리티지재단이 1981년 연방 정부의 인력 감축 등을 주장하며 내놓은 ‘리더십을 위한 지침(Mandate for Leadership)’ 보고서는 당시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운영 방침으로 채택됐으며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당시에는 퓰너 회장이 인수위원회 선임고문을 맡기도 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로부터 ‘100명의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 보수주의자’로 두 차례 선정됐고 2009년 포브스에서 ‘워싱턴에서 여섯 번째로 영향력 있는 보수주의자’로 평가되기도 했다. 아시아 문제에 관심이 많아 1982년 해리티지재단 산하에 아시아연구센터를 설립했으며 현재는 재단 이사장에서 물러나 이 센터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941년 미국 시카고 △1964년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 MBA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 연구원 △1977~2013년 헤리티지재단 이사장 △헤리티지재단 아시아연구센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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