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로드맵을 구체화하면서 원내 1·2·3당 모두 비대위로 운영될 예정이다. 여당은 지도부 리더십 위기로 인해, 야당들은 잇따른 선거 패배 때문에 비대위를 꾸리게 됐다. 원내 주요 정당들이 모두 ‘비상 체제’를 선언한 것은 2016년 20대 국회 출범 직후 새누리당·민주당·국민의당이 모두 비대위로 전환한 후 6년 만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53일간의 여야 대치를 통해 국회가 가까스로 정상화됐음에도 정책 논의는 실종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비대위 체제 전환을 늦어도 10일까지 마무리 짓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3·9 대선 패배 직후 윤호중·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 체제로 전환한 뒤 6·1 지방선거를 계기로 우상호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내세웠다. 정의당 역시 지방선거 참패 이후 대표단이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면서 이은주 원내대표가 비대위를 이끌고 있다. 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 등 소속 의원이 한 명인 소수 정당을 제외하면 원내 정당 모두가 비대위 체제로 돌입한 셈이다.
여야 모두 내홍을 겪다 보니 법안 논의는 전무한 실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뒤 87일 동안 국회에서 상임위원회가 가동된 날은 24일에 불과하다. 이 중 인사청문회나 소관 부처 업무 보고 등을 제외하고 법안 논의를 위해 상임위가 소집된 경우는 5월 16~19일, 5월 26일, 7월 29일, 8월 1일 등 7일뿐이었다. 이마저도 5월 26일과 8월 1일은 소관 상임위에서 의결한 법안을 법제사법위원회가 체계·자구 심사하기 위해 열린 것이었다.
‘시급한 민생 현안 해결’을 내세우며 출범한 국회 민생경제안정특별위원회도 용두사미로 그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민생특위 출범 목적이 상임위 배분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급한 민생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상임위가 구성됐으니 더 이상 유지될 명분이 없는 셈이다. 게다가 여야 간 이견이 없던 유류세 탄력세율 확대와 직장인 식대 소득공제 확대는 이미 특위를 통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법안 논의는 소관 상임위가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납품단가연동제나 화물차 안심운임제 등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과제의 경우 민생특위가 논의를 주도하려 해도 소관 상임위에서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17개 상임위는 정기국회 전까지 제대로 운영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8월 중 각 결산 국회가 이어지는 데다 제1 야당인 민주당의 경우 28일까지 전당대회를 진행할 예정이어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여야 모두 비대위 구성을 마치면 사실상 9월”이라며 “정기 국정감사와 예산안 심의까지 마치면 사실상 올해가 다 가버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잦은 비대위 출범을 막기 위해서는 갈등 중심의 정당 구조를 정책 정당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원내 1·2·3당 모두 비대위로 전환한 것에 대해 “비상 체제가 뉴노멀이 돼버렸다”며 “권력투쟁이 심화된 한국 정치의 현주소”라고 비판했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비대위 자체가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체제”라며 “정당 정치 선진화를 위한 정당 개혁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지도부 중심의 권력투쟁 정치가 아닌 정책 정당이 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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