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석 달도 되지 않아 50%대에서 20%대로 떨어졌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지지율 변화가 예전보다 빨라졌지만 이것만으로는 급락을 설명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의 인사(人事), 여당 내부의 갈등 등이 원인으로 거론되지만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분명하지 않다고 한다. 국민을 불안에 빠뜨린 큰 사건이 없는데도 지지율이 떨어졌다면 윤 대통령에게 기대를 걸었던 지지층의 이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채용과 임금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다가 윤 대통령이 내세운 공정과 상식에 호감을 느낀 청년층이나 좌파 포풀리즘에 눌려 있다가 윤 대통령이 내세운 자유와 민간 주도 경제에 희망을 건 보수층의 지지율 하락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경제 성과와 대통령의 지지율은 깊은 관계가 있다. 정치경제 학계의 연구들을 보면 실업 증가, 물가 급등, 소득 감소 순으로 악재로 작용한다. 하지만 한 번에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고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반영된다. 경제위기는 양면성을 가진다. 위기 그 자체는 악재지만 위기 해결에 대한 기대감은 호재로 작용한다. 위기가 닥치면 정부에 해결책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 취임 이후 불거진 글로벌 경제위기는 그렇지 못했다. 물가 급등과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만 커졌고 정부의 위기 해결 역량은 보이지 않았다. 취임 이후 터진 CJ택배와 화물연대에 이은 대우조선 하청노조 등의 파업에서 정부는 어정쩡한 모습이었다.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가치와 이익에 관한 문제다. 이익은 불평등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특정 집단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보호, 가치는 자원 배분의 일반 원리에 관한 문제를 의미한다. 어떤 것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이념이 나뉜다. 이익의 문제는 좌파가, 가치의 문제는 우파가 중시한다. 선거에서 좌파는 특정 집단을 겨냥해 득표하지만, 포퓰리즘으로 흐르면서 불평등이 오히려 커지고 정체성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악화하면 우파가 유리해진다. 윤 대통령은 이익 문제에 매몰된 좌파 정치의 실패로 당선됐다. 취임사에서 ‘자유시민’ 등의 단어를 등장시키며 가치의 문제를 강조했다. 국회 시정연설에서 천명한 연금·노동·교육 개혁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은 가치를 실행에 옮기는 참모들의 전략 부재에 기인한 바가 크다. 가치와 이익이 항상 배치되는 것은 아니기에 자칫하면 혼재해 국정 운영의 철학이 불분명해진다. 더군다나 참모들이 이익 문제를 추구한 지난 정부에서 타협에 익숙해지고 반면 윤 대통령이 중시하는 가치를 기술적인 문제로 가볍게 여긴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참모들이 이런 문제를 제대로 인식만 해도 지지율 하락은 멈추게 된다. 정치 기반이 약하고 취임 초에 그다지 인기가 없었던 빌 클린턴 대통령이 그랬다. 그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면서 개인 경제활동의 자유를 확대하는 일련의 개혁을 여소야대 의회임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였다.
개혁은 가치를 기반으로 이익을 조정하는 일이다. 개혁은 시간이 걸리지만 시작이 반이고 윤석열 정부 출범은 개혁의 신호탄이다. 하락하는 성장률과 위험수위를 넘어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 글로벌 경제위기가 더해져 개혁의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크다. 미중 대립 등 국제질서의 급변으로 국내 정치에서 가치의 문제는 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나라들끼리 협력이 강화되고 이익 문제를 미끼로 중국의 한국 흔들기가 드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럴수록 윤 대통령이 가치에 충실하고 참모들이 전략을 꼼꼼하게 챙기면 클린턴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지지율은 회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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