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연기인생에 옷을 완전히 벗는 선택은 힘든 결정이었죠”
영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란데’에서 기품 있는 여배우 엠마 톰슨(63)이 누드 연기를 감행했다. 섹시함과는 거리가 먼, 보기에 따라 불편할 수도 있는 노출이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벗은 몸을 꺼리낌없이 보여준 이유는 분명하다. 50대 중반이 되어서야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입고 있던 목욕가운을 떨어뜨리고 자신의 육체를 유심히 바라보는 찰나의 순간을 통해 여성들이 ‘성’ 담론을 자유롭게 펼치길 원했다.
엠마 톰슨은 “여성은 성적 쾌감에 관해 정직하지 않다. 수치심이 있어서 성적 쾌락을 대화의 주제로 삼지도 않는다”며 “사회가 점차 성에 개방적인 태도로 변화하고 있다지만 영국 여성은 여전히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 우리 사회가 성 담론의 자유를 누리도록 물음표를 던지는 영화이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영화에서 엠마 톰슨은 남편과 사별한 55세의 전직 종교 교사 낸시 스토크로 출연한다. 부부 관계에서 성적 만족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던 그녀는 은퇴 후 ‘섹스 혁명’을 시도하며 20대 청년 리오 그란데(다릴 맥코맥 분)를 돈으로 산다. 성적 탐구를 위해 예약한 젊은 남자를 호텔방에서 기다리면서도 ‘이래선 안되는 이유’를 두 세가지 찾아내지만 방문 너머로 처음 본 그가 근육질의 미남이라는 데 안도하며 그에게 이끌려간다. 지난 베를린 영화제에서 엠마 톰슨은 “19일 동안 다릴과 나는 거의 알몸이나 마찬가지 상태에서 호텔방에 계속 있었다. 촬영에 들어갈 용기를 내기까지 우리 둘은 땅바닥에 누워 서로의 몸 주위에 뭔가를 그리며 리허설을 반복했다. 우리의 몸에 대해 이야기하고 좋아하는 부위, 싫어하는 점을 들어 서로의 몸을 묘사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옷을 벗은 채 지내는 게 익숙해졌다”며 “나 같은 영국 청교도에게는 정말 힘든 일이었는데 경계를 넘어서니 자유가 찾아왔다”고 밝혔다.
거울 앞 누드 연기에 관해서는 “운동과 다이어트로 다듬어진 날씬한 몸, 보정을 거친 아름다운 몸이 아닌 자연스러운 여성의 몸을 영화에서 보는 건 누구에게나 익숙하지 않다”며 “나이가 들어가면 육체는 변한다. 확실히 여성들은 자신의 몸을 싫어하도록 평생 세뇌를 당해왔다. 보기 좋게 만들어진 여성들만이 몸을 보여줄 자격이 있다는 세뇌는 불합리하다는 걸 상기시켜 주고 싶다. ‘있는 그대로의 몸’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 ‘52번의 화요일’로 2014년 선댄스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던 소피 하이드 감독은 러닝타임 97분 중 90% 이상을 낸시와 리오 둘의 대화로 채운다. 아카데미상 2관왕에 빛나는 ‘센스 앤 센서빌리티’의 우아한 배우 엠마 톰슨이 구사하는 영국식 유머가 유쾌함을 선사하며 성에 대한 19금 대화까지 관객을 무장해제시킨다. 코로나19 봉쇄령이 낳은 수작으로 올해 선댄스와 베를린, 트라이베카 영화제를 휩쓸었고 훌루(Hulu)에서 스트리밍 중이다. 중년여성 관객들에게 힐링이 될 이 작품은 연극 무대로 옮겨가도 좋을 만큼 스토리텔링이 매력적이다./ 하은선 미주한국일보 부국장, 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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