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을 포함해 글로벌 경제가 내년에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에 빠질 것 같습니다. 1970년대와 같은 공급 쇼크와 높은 인플레이션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 원인입니다.”
히카르두 레이스(44) 런던정경대(LSE)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서울경제와 진행한 창간 특별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은 내년, 아마도 2024년 초가 지난 뒤에나 원래 추세로 내려가게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레이스 교수는 현 상황이 1970년대와 비슷하지만 기간은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봤다. 그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세계 경제, 특히 미국과 유럽이 유리한 조건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라며 “유로존의 실업률은 사상 최저 수준이고 미국의 경제 성장도 지난 18개월 동안 좋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던 1970년대를 되돌아보면 중앙은행들이 이를 통제하지 못했던 기간이 5~7년 정도”라며 “(과거의 교훈 덕에) 이번에는 같은 실수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우리가 겪을 상황은 1970년대에 10년 내내 겪은 어려움보다는 1972년부터 1973년 정도와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데이터 업체 매크로트렌즈(Macrotrends)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972년 3.27%에서 1973년 6.18%까지 올랐다. 이후 오일쇼크로 1974년에 두 자릿수(11.05%)를 찍은 뒤 다시 잠잠해졌지만 1976년 2차 오일쇼크를 맞아 또다시 두 자릿수로 올랐다. 지금도 1970년대처럼 공급이 타이트하지만 두 자릿수 물가나 장기간에 걸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비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레이스 교수의 관측이다.
다만 그는 미국을 지목하며 경제활동이 전방위적으로 오랜 기간 축소되는 경기 침체를 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레이스 교수는 “미국이 침체에 빠질 확률이 안 그럴 확률보다 높다”며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그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 중국의 코로나19 봉쇄와 팬데믹에 대한 두려움, 통화정책 긴축 때문”이라고 짚었다.
특히 그는 이 과정에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레이스 교수는 “만약 갑자기 비가 내려 머리가 흠뻑 젖었다면 비가 문제이니 내 책임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느냐”며 “나는 우산(통화 긴축)을 갖고 있었지만 쓰지 않았다. 심지어 우산을 펴지 않을 좋은 이유가 있었거나 우산에 문제가 있었어도 내가 비에 젖은 것(높은 인플레이션)은 나의 문제”라고 비유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19, 공급망 문제, 과도한 재정 지원 등은 연준의 통제 영역 밖이지만 과도한 돈풀기로 인플레이션을 부추긴 것은 연준의 명백한 과오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이 뒤늦게 물가를 잡으려 나서면 과도한 금리 인상으로 경기 침체를 초래한다고 알려져 있다.
레이스 교수는 “(미국에 침체가 일어난다면) 그 책임을 오롯이 통화정책에만 돌리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지난 12개월 동안 지나치게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통해 물가가 치솟도록 내버려둔 것은 분명한 실수”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의 다른 많은 결정 요인에 맞춰 통화정책을 조정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우리가 중앙은행에 인플레이션 타깃을 지키라고 말할 수 있고 중앙은행도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데 (연준은) 그러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지난해 봄부터 인플레이션에 관한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연준은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라는 판단을 유지하다 9월 들어서야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과 금리 인상 계획을 시사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정점에 도달했는지 묻는 질문에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월가에서는 6월 CPI가 전년 대비 9.1% 폭등한 후 7월 휘발유 가격이 떨어졌다면서 향후 물가 상승률이 낮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그는 “인플레이션은 많은 동력들의 상호작용으로 결정되므로 언제가 정점인지 말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나를 포함해 그 누구도 휘발유 가격과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 팬데믹의 새로운 움직임, 금융 안정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다만 레이스 교수는 “인플레이션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통화정책”이라며 “통화정책의 힘이 이제 발휘되기 시작하고 있으므로 향후 몇 달간 연준의 통화정책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인플레이션이 피크냐 아니냐를 결정할 핵심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으로 최소 몇 개월간 연준이 강한 인플레이션 억제 의지를 보여야 현 수준을 정점으로 물가 상승률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과 달리 유로존은 인플레이션 피크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그는 진단했다. 레이스 교수는 “연준과 달리 유럽중앙은행(ECB)은 이제야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며 통화 긴축의 약효가 나타나려면 더 기다려야 한다고 밝혔다. ECB는 지난달 말 11년 만에 금리를 0.5%포인트 깜짝 인상했고 이어 이달 4일(현지 시간)에는 영국 중앙은행(BOE)이 27년 만에 0.5%포인트의 ‘빅스텝’을 단행했다.
시장에서 제기되는 연준의 금리인하설에 대해서는 “인플레이션이 결정적으로 떨어질 때까지 (인상이)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 인플레이션이 매우 높은 상태이기 때문에 많은 경제 주체들은 연준이 이를 낮출 수 있을지에 대한 능력을 의심하며 그들의 지출 계획과 임금 요구 기대치에 이를 포함하고 있다”며 “연준은 이 사이클을 깨야만 하며 인플레이션이 낮아질 때까지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를 고려하면 금리 인상 중단 시점은 물가가 확실히 떨어지는 때가 될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레이스 교수는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통제되고 있다고 판단하면, 즉 결정적으로 수치가 하락하기 시작하면 금리 인상을 중단할 것”이라며 “이 때문에 금리가 얼마나 더 올라야 하고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릴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갖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전했다.
◆ 레이스 교수 약력
포르투갈에서 태어난 히카르두 레이스 교수는 경제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장파 학자다. 2004년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그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고(故) 케네스 애로 교수를 기리기 위해 가장 뛰어난 논문을 내놓은 경제학자에게 수여하는 케네스애로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유럽 경제 연구에 기여한 45세 이하 경제학자에게 주는 이리외얀손상을 수상했다. 불평등 연구로 이름난 토마 피케티가 이리외얀손상의 대표 수상자다.
프린스턴대를 거쳐 29세에 미 컬럼비아대 역대 최연소 전임교수로 임용됐으며 현재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연구하고 있다. 신케인스학파로 하버드대 재학 시절 그레고리 맨큐 교수와 함께 필립스곡선과 일반균형이론에 관한 논문을 냈다.
◇약력 △영국 LSE 학사 △미국 하버드대 박사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 △〃컬럼비아대 경제학과 교수 △영국 중앙은행(BOE) 자문위원 △미국 리치먼드연방준비은행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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