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경제 위기가 악화일로다. 국제금융협회에 따르면 3월부터 7월까지 미국 등 선진국을 제외한 개발도상국가를 뜻하는 ‘신흥국’의 자본 순유출 규모는 393억 달러(약 51조 원)에 달했다. 신흥국의 통화 가치도 급락하고 있다. 올 들어 7월까지 달러 대비 스리랑카 루피 가치는 43.8%, 파키스탄 루피 가치도 25.5% 하락했다. 스리랑카는 5월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했고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신흥국의 ‘달러 탈출’ 현상은 글로벌 연쇄 금융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의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 공포가 신흥국 경제에 직격탄을 안긴 셈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동남아 부채 문제는 1997년 동아시아 외환 위기의 속편이 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내놓았다. 신흥국의 금융 위기는 가뜩이나 취약한 세계 경제에 또 다른 뇌관이다. IMF는 신흥국의 3분의 1, 저소득국의 3분의 2가 부채 위기에 시달리면서 글로벌 경제를 침체에 빠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스페인·그리스 등에서는 금리가 치솟으며 남유럽 재정 위기 재발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다. 무역 의존도가 70%가량에 이르는 우리로서는 신흥국 위기가 한국의 금융·실물 경제로 전이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정부는 더 이상 외환 위기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외국 자본 유출입 모니터링 강화 등 비상 대책을 세워야 한다. 특히 약한 고리인 동남아·남유럽 등의 금융·재정 위기가 쓰나미처럼 밀려와 충격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컨틴전시플랜을 만들고 미리 방파제를 쌓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역수지 적자 구조를 개선하고 정부 정책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재정 혁신의 고삐를 바짝 죄는 것은 물론 규제·노동 및 공공 부문 등의 구조 개혁에 가속도를 붙여 경제 체질을 강화하는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