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의 아침 풍경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을 방불하게 했다. 간밤에 쏟아진 폭우로 침수돼 버려진 차량들로 도로는 꽉 막혔고 지하철 운행이 중단된 사실을 몰랐던 시민들은 이미 길게 줄이 늘어선 버스 정류장을 향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빗물이 들이닥쳐 집과 가게가 침수된 시민들은 빗줄기가 잠시 줄어든 새벽부터 나와 물을 퍼내고 젖은 가재도구를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힘겨운 아침을 시작한 시민들은 “80년 만의 폭우라고 해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대비와 대응이 너무 안이하다”면서 “매번 겪는 일이지만 그때마다 국가의 재난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날 아침 뉴스를 통해 ‘출근길 대란’을 인지한 직장인들은 평상시보다 집에서 일찍 나섰다. 그럼에도 꽉 막힌 도로와 지하철 운행 중단 등으로 인해 직장을 향한 ‘고난의 행군’을 피할 수 없었다. 마포구에서 판교신도시로 출근하는 박 모(25) 씨는 “오전 6시 반에 집에서 나왔는데 버스가 기어가는 바람에 회사에 도착하니 오전 9시를 훌쩍 넘겼다”며 “원래대로라면 8시에 회사에 도착을 했어야 하는데 세 시간 가까이 걸린 셈”이라고 말했다. 셔틀버스를 타고 양재동으로 출근하는 권 모(26) 씨도 “아침 출근길이 두 시간 넘게 걸렸다”며 “버스에 탄 직원 모두 지각했다”고 푸념했다.
특히 열차 운행이 중단된 9호선을 이용한 직장인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갑작스러운 동작역 폐쇄 소식에 20여분간 서성이던 강 모(30) 씨는 “9호선이 폐쇄됐다고 해 일단 밖으로 나왔는데 동작역 주변 지리도 복잡하고 주변에 가까운 버스 정류장도 찾기 어려워 계속 역사 주변을 헤맸다”면서 “결국 4호선을 다시 타 이수역에서 7호선을 이용해 강남으로 가려고 한다”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 오후 들어서도 마비된 교통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양재교 하부도로와 개화나들목 개화육갑문 등 구간은 양방향 모두 통제됐다. 이에 막힌 구간을 피해 차들이 다른 도로로 몰리고 일부 교통 시설이 고장나면서 서울 시내 곳곳에서는 하루 종일 교통 체증이 발생했다. 서초터널에서는 오전 8시께부터 점심 무렵까지 기름이 떨어진 차주들이 차량을 버리고 가거나 화장실을 찾아 헤매면서 운전자 상당수가 옴짝달싹 못 한 채 고립되는 일도 있었다.
전날 폭우로 귀갓길이 어려워진 직장인들은 모텔 등에서 급히 잠을 자고 출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광화문·구로디지털단지·가산디지털단지·강남역 등 직장인이 많은 지역에서는 때아닌 ‘숙박대란’이 벌어졌다. 일부 숙박 업체들은 숙박료를 1만~2만 원 올려 받는 등 ‘얌체 영업’을 해 빈축을 샀다.
침수 피해를 입은 강남역 인근 자영업자들은 스스로 복구 작업을 시작해야 했다. 가게 주인들은 추가 침수를 막기 위해 모래주머니로 벽을 쌓았고 이미 침수된 집기와 가게 소품 등을 쓰레기 포대에 담아야 했다. 지하에서 장사를 해 피해가 큰 점주들은 펌프 호스를 구해 물을 빼기 바빴다. 강남역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가게에 물이 허리까지 찼다”며 “지금 물을 빼지만 추가 강수 소식이 예고돼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주택·상가 피해 신고는 650여 건이 접수됐다. 특히 피해가 컸던 서울 서초구와 강남구는 수중펌프 등 배수장치가 부족해 신속한 복구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서울에서 발생한 이재민은 총 840명 규모로 집계됐다.
산사태 피해도 잇따랐다. 동작구 사당동 극동아파트에서는 인근 산사태로 축대가 붕괴하면서 차량 3대가 파손되고 인근 주민 83명이 대피했다. 관악구 청룡산에서는 전날 산사태가 발생해 밤새 주민 50여 명이 몸을 피했다. 서울 서초구 우면산에서는 계곡에 설치된 목재 다리와 쉼터 정자가 파손되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 서울대 관정도서관과 인문대 건물 곳곳에 빗물이 덮치면서 학생들이 대피했고 강남구 코엑스의 별마당도서관도 일부 천장에 물이 샜다.
인명 피해도 늘고 있다. 관악구 신림동에서 반지하에 살던 발달장애 가족 3명이 침수된 집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이날 오후 7시 기준으로 폭우로 인한 사망자는 9명, 실종자는 6명으로 집계됐다.
폭우 피해가 커지면서 정부와 지자체의 재난 대응을 성토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8일 오후부터 폭우가 예고됐음에도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재난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퇴근해 집에서 전화로 재난 대응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퇴근했다가 오후 10시가 돼서야 시장실로 돌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컨트롤타워가 붕괴된 인재’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김 모(24) 씨는 “수도권 전역에서 물난리가 났는데 대통령이 자택에서 꼼짝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폭우는 오후 4시부터 계속 예고됐고 경보도 발령된 상태였는데 집에 갇혀서 전화로 지시를 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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