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들은 건축물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름다움은 개인의 주관적인 것입니다. 전부가 될 수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기쁨(delight)을 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살고 싶고 보고 있으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건축입니다.”
‘공동성(共同性·commonness)’의 건축을 강조해온 김광현(69·사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9일 서울 반포동의 한 카페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건축이란 인간 내면 깊숙이 울림을 주는 것”이라며 이같이 정의했다. 도쿄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대한건축학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2018년 황조근정훈장을 받았고 한국건축문화대상 올해의 건축문화인상, 김정철 건축문화상도 수상했다.
20세기 최고 건축가 루이스 칸에게 큰 영향을 받은 김 교수는 아름다움은 건축의 최종 목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사람에게 공동의 가치를 주고 있다면 아름답지 않아도 훌륭한 건축물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건축의 사회적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는 “아파트로 치면 20평짜리가 100평짜리보다 나쁘다고 할 수 없다. 혼자 살면 20평이라도 충분한데 100평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라며 “건축은 각자의 가치를 제대로 읽고 설계해 짓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 교수의 지론인 ‘공동성’의 최종 목적은 여기에 기초한다. 여행을 할 때 다른 나라의 훌륭한 건물과 오랜 마을을 보고 감탄하고 공감하는 것은 그것이 아름답고 신기해서가 아니다. ‘무릇 사람들이 저렇게도 사는구나’ 혹은 ‘저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하는 가치를 건축에서 발견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만난 적도 없고 시대도 다른데 건축물을 통해 시공간을 뛰어 넘어서게 하는 가치, 그것이 공동성이라는 것이다.
그는 건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올해 프리츠커상 수상자 프랑시스 케레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오지 마을 출신인 케레는 자신이 유학을 떠나 그가 해야 할 일을 마을의 누군가가 대신하고 있다며 고향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첫 번째 프로젝트가 고향에 초등학교를 짓는 일. 여기에는 사회 공동체의 정치적·문화적·환경적 측면을 고려하는 적정 기술이 사용됐다. 기술을 배운 그들이 다른 동네에 가서 대신 지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사람들은 케레의 건축에서 살아가는 보람을 깨달았다. 그것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기쁨을 줬기 때문”이라며 “건축물을 통해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공동의 가치를 창출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우리도 건축에서 공동성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아파트 단지에 주변 이웃과 같이 쓸 수 있는 도서관을 짓는다면 주민은 인간 공동의 가치를 나눈다는 자부심과 보람을 가질 수 있다. 건축은 누구의 것이지만 모두의 기쁨이 될 수 있다. 건물을 ‘지배’하려 들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미술품이나 자동차 같은 것도 기쁨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건축물과 같이 살아가면서 지속적으로 계속되는 커다란 기쁨은 줄 수 없다. “대를 이어 기쁨을 전하는 자동차나 휴대폰을 본 적 있나요. 그러나 잘 지어진 건축물은 100년, 1000년도 갑니다. 그만큼 건축이 주는 기쁨도 오래가고 후손에게 넘겨집니다. 그래서 건축물은 사회적 자산이라고 합니다. 재건축·재개발을 하며 때려 부수고 새로 크게 지으면 되는 그런 대상이 아닙니다.”
모든 건축물은 혼자 되는 것이 아니다. 함께 짓고 사용한다. 케레가 학교를 지을 때 아이들은 돌을, 여성들은 항아리를 만들어 왔다. 그것이 기초가 되고 지붕이 됐다. 김 교수가 ‘모두가 짓는 건축’ 또는 ‘모두의 건축’을 강조하는 이유다.
최근 그에게는 한 가지 바람이 있다. 정치인과 지자체장들이 건축에 대해 배우고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는 게 없는데 어떻게 건축물로 시민과 주민에게 공공의 기쁨을 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몇백만 채를 짓겠다는 ‘주택 정책’만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다루는 ‘주거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책을 만드는 이들이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 건축의 가치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라며 “주변 이웃과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어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복지”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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