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용시장이 활황을 보이는 가운데 7월 물가 상승세가 예상보다 큰 폭으로 둔화하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뜨거운 고용 시장만 놓고 보면 금리를 크게 올릴 수 있지만 미국 경제가 2개 분기 연속 역성장한 가운데 연일 치솟던 인플레이션도 둔화하자 마냥 금리를 올리기도 꺼림칙해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큰 폭의 금리 인상을 이어가야 한다는 연준 인사들의 발언에도 시장이 물가가 정점을 찍었다는 것에 집중하며 금리 인상 폭이 완화할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두면서 미국 주요 주가지수는 일제히 상승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100일 이상 지속된 베어마켓(약세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강세장에 진입했다.
10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고용시장이 강세를 보이는 와중에 물가 상승 속도가 꺾이면서 연준의 금리 결정을 복잡하게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준은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는 물가 상승 압력과 경제활동 활황이 식어가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는데 지표들이 서로 엇갈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나온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8.5% 올라 6월 수치(9.1%)는 물론 시장 예상(8.7%)을 모두 밑돌았다. 변동성이 심한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CPI는 5.9%로 6월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지만 이 역시 예상치(6.1%)는 밑돌았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월간 물가 지표가 하락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금리 상승 폭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해왔는데 7월 수치가 그 첫 번째 신호를 보낸 셈이다.
반면 노동시장은 여전히 뜨겁다. 지난주 나온 7월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자수는 52만 8000명으로 시장 예상치(25만 명)의 두 배가 넘었다.
연준의 고심과는 별도로 시장은 물가가 정점을 찍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며 환호했다. 연준의 금리 인상 폭을 예측하는 페드워치를 보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0.5%포인트 인상에 나설 확률은 9일 32%에서 10일 CPI 발표 후 62.5%로 하루 새 두 배 이상 뛰었다. 반면 0.75%포인트 인상 확률은 37.5%로 쪼그라들었다. 연준의 속도 조절 기대감에 뉴욕 증시에서 나스닥지수는 2.89% 뛴 1만 2855로 장을 마쳤다. 6월 중순의 저점 대비 20%가 오른 수준으로 금융위기 이후 최장 기간의 약세장에서 벗어나 기술적 강세장에 들어선 것이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이날 1.63% 오른 3만 3310,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역시 2.13% 상승한 4210에 각각 장을 마치며 3대 지수가 모두 5월 4일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물가 안정에 사활을 걸었던 조 바이든 미 대통령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연설에서 “우린 일자리 급증 등 보다 강력한 노동시장을 보고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완화할 수 있다는 징후로 보고 있다. 나의 경제계획이 작동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로이터는 7월 물가 수치가 바이든 정부에 ‘구원’으로 다가왔다고 평가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섣부른 낙관을 경계하고 있다. BMO캐피털의 브라이언 벨스키 최고투자전략가는 “물가가 상승할 때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과 같이 올라갔지만 내려올 때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것과 같을 것”이라며 “물가 압력이 사라지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봤다. 수요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을 보여주는 근원CPI가 추가 상승하며 인플레이션 억제에 복병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마이클 퍼글리제 웰스 파고 이코노미스트는 “주택과 서비스 물가가 주도하는 근원CPI는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들도 시장의 기대감을 경계하듯 매파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찰스 에번스 시카고 연은 총재는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높다”며 “물가 상승률이 연준의 목표치인 2%로 되돌아올 수 있게 올해와 내년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대표적 비둘기파인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도 “7월 물가 지표는 인플레이션이 옳은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는 첫 번째 힌트에 불과하다”며 “연준이 올해 (남은 3번의 회의에서) 금리를 1.5%포인트 추가로 올리고 내년에는 4.4% 언저리까지 인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의 정책금리는 연 2.25~2.5%다. 그는 “연준이 (물가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선언하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덧붙였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9월 20~21일 FOMC까지 예정된 굵직한 이벤트로 쏠리고 있다. 이달 25~27일에는 잭슨홀 미팅에서 파월 의장이 마이크를 잡으며 다음 달 2일과 13일에는 8월 고용지표와 CPI 상승률이 각각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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