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감 있다. 굵직한 역사적 사건과 영화적 상상력이 조화를 이루고, 주연 배우 이정재·정우성 투톱 구조도 짜임새 있다. 연출과 연기를 동시에 해 낸 이정재는 어느 한곳에 치우치지 않게 모든 힘을 쏟았다.
영화 ‘헌트’(감독 이정재)는 망명을 신청한 북한 고위 관리를 통해 정보를 입수한 안기부 해외팀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 김정도(정우성)가 조직 내 숨어든 남파 공작원 동림 색출 작전에 나선 이야기다. 동림을 통해 일급 기밀사항들이 유출되며 위기를 맞게 되자 해외팀과 국내팀은 서로를 의심한다.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던 박평호와 김정도는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되고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한다.
작품은 역사적 배경이 근간이 되지만 픽션이라는 것에 집중했다. 모티브가 된 것은 5·18 민주화운동과 북한 장교 이웅평 월남 사건, 아웅산 테러 사건 등 격변했던 대한민국 근현대사다. 이런 역사의 무게를 잃지 않으면서도 진부하게 이끌어가지 않으려는 이정재 감독의 노력이 엿보인다.
다만 복잡다단한 사건들이 초반부터 몰아쳐 집중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특히 한국의 역사적 배경을 모르는 해외 관객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는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에서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는 해외 관객들 평에서도 알 수 있다. 이정재 감독은 다양한 평가를 과감히 수용해 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각색을 다시 했다고. 이 덕분에 개연성의 부족은 몰입도를 확 높이는 초반 액션신으로 상쇄됐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투톱 구조의 균형은 놀랍다. 작품이 주로 박평호의 시점으로 흘러가면서 미세하게 비중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무게감은 균등하다. 어느 한 쪽이 틀렸다고 할 수 없는 이념의 싸움은 팽팽하다. 두 사람이 이유는 다르지만 사냥감이 같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시작된 아슬아슬한 공조는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정재·정우성이 이 모든 것을 함께 끌고 가는 힘은 대단하다. 영화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에 스크린에서 조우하기에 딱 알맞은 작품이다.
액션 활용도 적재적소다. 총격전은 물론이고, 맨몸 액션, 카체이싱, 폭파신이 계속되지만 과하지 않다. 박평호 김정도의 신경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계단 액션신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속내를 감추던 이들이 계단을 구르며 주먹다짐을 하는 이 장면은 서로 다른 이념의 인물들이 이후 한 몸이 된다는 것이 암시한다.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의 폭파신에서 모든 것이 회색빛으로 뒤덮이는 것 또한 의미를 내포한다.
카메오 활용 방식은 현명하다. 배우 이성민 황정민 유재명 등이 핵심 인물로 특별출연한 것에 비해, 배우 박성웅 김남길 주지훈 조우진 등은 스쳐 지나가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라 찾아 보는 재미가 있다. 스타들의 출연보다 전체적인 스토리에 신경 쓴 이정재 감독의 고뇌가 느껴진다.
빈틈이 없는 짜임새는 단점으로 작용되기도 한다. 촘촘하게 균형 잡으려 노력하다 보니 숨 쉴 틈 없이 빽빽하다. 최절정을 위한 강약 조절의 부족이 아쉽다.
그럼에도 이정재 감독의 첫 연출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연출부터 제작, 연기까지 모두 디테일을 놓치지 않은 것이 보인다. 배우 아닌 감독으로서 차기작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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