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여러 명이 무대 위에 올라와 각자 주어진 역할에 따라 서로 다른 소리를 동시에 전하는 이색적 공연 형식인 ‘판소리 합창’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소리꾼 한 명과 고수 한 명이 무대에 오르는 일반적 판소리는 물론 소리꾼 여러 명이 연극을 하는 창극과도 다른 형식이다. 바로 6일부터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 중인 ‘오버더떼창: 문전본풀이’다. 제주 가택신 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 판소리로 꾸며진 이 공연은 특히 판소리 창작자 박인혜와 두산아트센터의 공동기획을 통해 무대에 올라 눈길을 끈다.
‘오버더떼창: 문전본풀이’는 집을 지키는 가택신이 부엌·변소·올레 또는 오방마다 자리하고 있다는 제주도의 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관념에 사로잡힌 아버지 남선비와 순종적인 어머니 여산부인, 그리고 일곱 아들이 가족 때문에 가정에 위기가 찾아오고 이를 다시 가족의 힘으로 이겨내는 이야기를 큰 줄기로 한다. 남선비가 친구의 권유로 신비의 섬 오동국으로 무곡장사를 하러 떠나고, 여산부인은 막내아들 녹디생이의 수완으로 곳간을 불리면서도 3년 넘게 남편이 오지 않자 직접 오동국으로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암전이 걷히고 공연이 시작되면 여섯 명의 소리꾼이 나란히 무대에 오른다. 첫 곡부터 출연자들이 각자 맡은 파트에 따라 나눠서 소리를 하는 모습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들은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주역은 물론 극을 받치는 뮤지컬의 앙상블과 같은 역할도 한다. 공연의 연출은 물론 작창·각색·음악감독·주연까지 겸한 박 창작자는 9일 공연 후 서울경제와 만난 자리에서 “판소리 하는 사람들은 각자 목소리 특색이 다른데, 이를 강점으로 쓸 수 있도록 꾸준한 연습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내는 게 목표였다”며 “공연 속 소리가 잘게 쪼개져 있는데 이를 고도의 집중력을 갖고 연습해 화음을 만들어냈다”고 전했다. 공연에서 부른 판소리 넘버들을 OST로도 발매했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가족 공동체에 대한 다른 목소리도 전해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원작 설화에서는 중도에 죽었던 여산부인이 이 공연에서 살아나면서 순종적이기만 하던 성격이 변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또한 여산부인이 남편과 아들에게 자주하는 “속 나누고 살자”는 대사는 가족을 비롯한 사람들 사이 소통의 중요성을 환기한다.
이번 공연은 두산아트센터와의 인연도 이채롭다. 두산아트센터가 젊은 예술가들에게 작품 개발비 일부와 장소 등을 제공하는 공모전인 ‘두산아트랩’에서 지원작으로 선정돼 지난해 3월 낭독극 형태로 스페이스111 무대에 올린 게 시작이었다. 낭독극을 통해 현재 공연 중인 분량의 60% 정도만 무대에 올렸지만 당시 좋은 반응을 얻음에 따라 이야기를 완성해보기로 했고 발전시킨 공연을 여러 무대에서 올렸다. 그리고 다시 두산아트센터의 올해 공동기획 공모에 지원해 선정됨으로써 다시금 온전한 극을 공연하게 됐다. 공동기획 작품으로 선정되면 제작비 일부와 함께 무료 대관의 혜택을 받는다. 박 창작자는 “뮤지컬을 할 때 다회차 공연을 하는 모습이 부러웠는데 국악 공연하는 입장에서 여러 회차를 공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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