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강령에서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을 삭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1가구 1주택을 주거 정책의 원칙으로 삼는다는 내용도 빼기로 했다. 당의 헌법 격인 강령 개정을 통해 문재인 정부 지우기에 돌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 전당준비위원회 강령정책분과는 11일 안규백 전준위원장에게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강령 개정안을 보고했다.
현재 민주당 강령에는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고 실직과 은퇴 등에 대비한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해 안정적인 소득주도성장의 환경을 마련한다’는 문구가 있다. 이 중 ‘소득주도성장’을 ‘포용성장’으로 바꾸는 방안이 제시됐다.
해당 문구는 민주당이 여당이던 2018년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강령에 들어갔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도 실패하면서 전준위원들 사이에서는 이를 삭제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이뤄졌다.
앞서 전준위에 소속된 친명계 김병욱 의원도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고 평가하기 어려운 소득주도성장을 계속 사용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전준위 핵심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해당 표현에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고 이제 야당이 된 민주당이 국정을 운영하는 것처럼 돼 있는 부분을 수정하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가구 1주택을 주거 정책의 원칙으로 삼는다는 내용도 강령에서 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에는 “실수요자 중심의 1가구 1주택을 원칙으로 내 집 마련 기회를 보장하고 모든 국민이 소득이나 재산과 관계없이 안정적인 주거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주거 정책을 추진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1가구 1주택’이라는 표현을 지우고 ‘실수요자 중심’만 남겨두는 방안이 추진된다.
투기 목적이 아닌 실수요를 위해 다주택자가 된 사람들도 당이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전준위의 한 관계자는 “최근 1~2년 동안 1가구 1주택 원칙에 대한 이견 제기가 많았다”며 “지방과 수도권에 집을 한 채씩 가지고 있는 등 불가피한 경우도 있어서 해당 원칙이 획일적이라는 우려가 다수였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강령 논의 과정에서 ‘촛불혁명’이라는 표현을 삭제하는 방안도 논의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역시 문재인 정부였던 2018년 강령 개정 과정에서 ‘촛불시민혁명의 위대한 민주주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문구가 추가된 것이다. 다만 강령 전문에 있는 해당 문구는 그대로 두되 정치 분야에서 중복적으로 언급됐던 내용은 삭제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정부와 궤적을 함께하는 조항들을 중심으로 삭제가 논의되자 친문계에서는 다소 불편한 기색이다. 익명의 친문계 의원은 “강령 개정에 대한 의견 수렴 절차가 미흡하다”며 “전준위 차원의 설문 조사만으로 당의 전체 노선을 처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공론화해서 토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친문계 의원도 “대안 없이 핵심 개념들이 빠진다면 당이 스스로 전 정부에 대해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고 지적했다.
전준위 강령정책분과는 그간 비공개 회의 및 4차례의 공개 토론회를 통해 해당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전체 의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 이 같은 방향의 개정에 상당수가 동의했다는 입장이다. 조사에는 재벌 개혁을 재벌·대기업 또는 대기업 개혁 등으로 대체하는 것과 금산분리 원칙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도 적극적 재정정책과 재정 건전성, 기본소득과 젠더 갈등 등에 대한 의견 수렴도 이뤄졌다고 한다.
전준위는 16일 전체회의를 열고 강령 개정안에 대해 최종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한 전준위원은 “현재 분위기상 제안된 안들이 그대로 의결되지 않겠냐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강령 개정안은 전준위 논의 후 비상대책위원회의 최종 의결을 거쳐 확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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