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물가 상승 폭 둔화로 ‘인플레이션 정점론’이 나오고 있지만 한국 경제에 드리운 먹구름은 더 짙어지고 있다. 10일 발표된 미국의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8.5% 상승에 그쳐 6월의 9.1%보다 크게 둔화됐다. 이에 따라 미국 물가가 정점을 지나 하락 추세로 돌아섰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하지만 한국 경제에는 되레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무엇보다 전체 수출의 19.7%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의 불황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주요국 경기 침체와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등으로 스마트폰·자동차 등 여러 산업 분야에서 반도체 수요가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세계 3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미국 마이크론은 9일 올 2분기 매출이 이전 전망치(68억~76억 달러)의 하단을 밑돌 수 있다고 공시했다. 앞서 8일 세계 1위 그래픽처리장치(GPU)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도 2분기 매출 전망치를 당초보다 17%나 낮췄다.
반도체 업황 악화는 우리 반도체 수출에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112억 달러에 그쳐 6월(124억 달러), 5월(115억 달러)보다 줄었다. 반도체 수출이 직격탄을 맞은 여파 등으로 8월 1~10일 우리나라의 무역수지 적자는 76억 77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훨씬 늘었다. 올해 무역 적자가 역대 최대였던 1996년의 206억 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한국 경제가 혹독한 ‘반도체 겨울’을 뚫고 글로벌 정글에서 생존하려면 정부와 정치권·기업들이 머리를 맞대고 초격차 기술 확보와 첨단 인재 양성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세제 및 규제 개혁 등으로 우리 기업들의 ‘모래주머니’를 제거해주고 압도적 기술 개발에 필요한 지원책을 총동원해야 한다. 또 반도체 외에도 초격차 기술을 가진 ‘신수종 수출 품목’을 발굴해 전략산업 다변화도 추진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도 진흙탕 싸움을 접고 4일 발의된 ‘반도체경쟁력강화법’을 조속히 처리해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