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국내총생산의 약 30%를 차지하는 부동산 산업의 장기 침체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주택 가격을 제한하려고 시작했던 규제는 코로나19를 만나 부동산 시장 안정이 아닌 불황을 촉발시켰고, 이제는 국가 경제 전반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당국에선 시장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채 하반기 경제 회복에도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현지시간) 중국의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면서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수 년간 중국 여러 도시에서 주택판매량과 가격이 상승세를 이어오다가 현재 하락세를 보이며 그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정보 제공업체 '중국부동산정보공사'에 따르면 중국 대형 부동산개발 업체의 주택 판매 규모는 13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70개 대도시와 중간 규모 도시의 주택 가격을 조사한 결과 7월 주택 평균 가격은 작년 동기 대비 0.5% 하락했다. 전달(-0.1%)에 비해 낙폭이 커졌다. 신규 공사에 들어간 주택과 입주 주택 면적은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4%, 35.4% 감소했다.
베티 왕 호주뉴질랜드은행(ANZ)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은 이미 경착륙했다"고 지적했다.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보고서에 따르면 2020~2021년 중국에서 사전 판매된 주택의 약 9%가 부동산 개발업체의 재정 문제로 인해 예정대로 완공되지 않을 위험에 처했다고 조사됐다. 약 240만 가구가 미완공으로 인해 입주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채무불이행(디폴트)로 파산 위기에 빠진 헝다를 비롯한 30여개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가 재무 건전성 악화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주택 분양을 받은 사람들이 주택 완공 지연을 이유로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상환거부에 나서며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부동산 개발업체는 자금난에 시달리며 공사를 제 때 마무리 짓지 못하게 되고 대출을 회수하지 못한 금융권은 자금난에 시달려 금융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일반적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20~30%를 계약금으로 지불하고, 나머지는 모기지를 실행해 갚아나가기 시작한다.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이 돈을 해당 아파트 건설에 써야 하지만 그동안 빈번하게 다른 사업에 활용했다. 부동산 경기가 좋았을 때는 추가 사업을 통해 돈을 융통할 수 있었으나 한번 시장이 침체에 빠지자 돈줄이 막혀버리기 시작했다. 사실상 돌려막기가 불가능해진 상황에 모기지 보이콧 움직임까지 벌어지자 곳곳에서 아파트 건설 중단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블룸버그는 이런 상황이 은행권으로 확산되면 최악의 경우 2조4000억위안(약 464조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글로벌 레이팅스의 분석을 인용 보도했다. 도이체방크는 주택융자의 최소 7%가 위험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중국 내 상장 은행들이 모기지 보이콧 운동으로 직접 영향을 받는 주택담보대출금이 21억 위안(4000억원) 수준이라고 밝힌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부동산 시장의 악화는 경제 전반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CNBC에 따르면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중국 당국이 당장의 효과적인 정책을 내놓지 않으면, 중국 여러 부문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자산운용사, 건설사, 철강사를 지목했다.
중국의 자산운용사는 부동산 관련 담보를 통해 상당한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중국 부동산 시장이 붕괴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업종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공사 중단이 이어질 경우 건설사도 당연히 문제를 겪게 된다. 철강업체 중에도 소형사들이 어려움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피치는 부동산 건설이 중국 철강 수요의 55%를 차지한다며 부동산발 침체로 소규모 철강업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 당국은 기본적으로 주택 투기 억제 방침은 고수하면서도 시장 활성화를 위한 노력은 지방 정부에 떠넘기고 있다. 이에 따라 지방 정부가 계약금 비중을 낮추거나 주택 구매 한도를 완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으나 한번 위축된 경기는 쉽게 되살아나지 않고 있다.
최근 허베이성 랑팡시는 부동산 시장 활성화 정책 안내문에서 랑팡시 호적이 없거나 사회보장제도를 적용받지 않는 외지인도 주택을 살 수 있도록 주택 구매 제한을 철폐한다고 밝혔다.
중국에선 주택 가격 급등을 막기 위해 해당 지역 주민 외에는 주택을 살 수 없게 했으나 랑팡시가 처음으로 이 제한을 없앤 것이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가장 강력한 경기 부양 카드를 내밀었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상황에도 중국의 부동산 경기가 쉽게 살아나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다. 중국 부동산 연구기구인 베이커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8개 도시 3만개 서취(중국의 구 아래 행정단위)를 조사한 결과 3개월 이상 거주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주택 공실률이 12%에 달했다. 베이징, 상하이, 선전, 광저우 등 1선도시의 평균 공실률은 7%였고 2선도시는 12%, 3선도시는 16%로 조사됐다. 경제 침체가 이어지면서 수요 자체가 살아나지 않아 부동산 시장 활성화 조치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