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4일로 한국과 중국이 정식으로 수교를 맺은 지 30년이 된다. 지난 30년을 돌아보면 두 나라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보였다. 수교 초기에 64억 달러에 불과했던 무역액은 2021년 3015억 달러로 무려 47배 늘었다. 한국은 세계 경제 10위권의 선진국 반열에 올랐고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주요 2개국(G2)’의 자리에 올랐다.
중국은 2003년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자 수입 상대국이 됐다. 한국의 대중 수출 의존도는 25%에 달하고 홍콩을 포함하면 30%까지 늘어난다. 중국 입장에서도 한국은 중요한 교역 상대다. 중국은 한국이 공급하는 반도체 등 중간재를 바탕으로 완제품을 만들어 전 세계에 수출한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한국은 중국의 제3위 교역국이다.
한국과 중국 양국은 적어도 경제적으로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국가가 돼버렸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중국을 대하는 태도가 급격히 달라지면서 곳곳에서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정권 초부터 정부 내에서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에서 탈피하겠다는 발언이 이어졌다. 청와대 경제수석은 ‘탈중국’을 외쳤고 국무총리는 “중국 경제가 꼬라박는 수준으로 가고 있다”며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에 투자하고 있는 기업들로서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 고위 관료들의 이러한 발언은 ‘이제 중국과 대놓고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로 다가오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는 취임하자마자 우리 기업들을 향해 “중국 투자에 있어 지정학적 리스크를 충분히 감안하라”는 경고 메시지를 날려 기업들의 불안을 더욱 부추겼다. 이른바 ‘파티는 끝났다’는 표현까지 나왔다고 하니 중국 사업을 하는 우리 기업의 불안감은 그야말로 최고조에 올라 있다.
정말 중국 없이도 한국 경제와 기업들이 살아갈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서둘러 대안을 마련하면 된다. 문제는 다른 국가가 중국을 보완할 수는 있어도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향후 몇 년, 아니 수십 년은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중국에 대한 외국 자본의 투자가 늘어나는 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우리보다 잘 살고 투자에 있어 우리보다 더욱 냉정한 국가들에도 여전히 중국은 ‘기회의 땅’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를 겪으며 중국에서 사업이 힘들어진 한국 기업들이 많다. 그들 중 일부에게 사드는 대형 악재였던 동시에 중국 내 사업을 축소할 좋은 명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드 사태가 모든 기업의 중국 사업을 위축시킨 것은 아니다. 상당수 기업들은 전략을 수정해 중국 시장을 자신들의 기회로 삼기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 긍정적 성과를 내고 있다. 삼성은 매년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반도체·배터리·적층세라믹콘덴서(MLCC) 등 첨단 부품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했고 매출 반등을 이끌어냈다. 식품 기업인 풀무원도 10년 가까운 적자를 감내하며 꾸준히 현지화 전략을 이어가 결국 중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수교 3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세계의 시장’으로 우뚝 섰다. 중국의 경제 발전과 글로벌 위상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당연히 기업들의 중국 전략도 달라져야 하고 정부의 지원도 변해야 한다. 정재호 대사의 취임사처럼 정부와 기업이 ‘원 팀’이 됐을 때 기업 경쟁력을 키울 수 있고 한국 경제 역시 더욱 발전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중국에서 한국 정부를 대표하는 정 대사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큰 시점이다. 기업들이 아무리 열심히 뛴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정부의 노력 없이는 좋은 결과물을 얻어내기 힘들다. 리스크가 있으니 감안하라는 조언도 필요하지만 그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정부 대표로 중국에 와 있는 리더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파티는 누구 하나의 일방적 종료 선언으로 끝나지 않는다. 모두가 짐을 싸고 돌아가기 전까지 파티는 계속돼야 한다. 적어도 먹을 것, 즐길 것이 남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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