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당첨 로또가 우연히 나에게 날아올 확률이 얼마나 될까. 뜻하지 않은 행운 앞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다. 영화 ‘육사오’(6/45, 이하 ‘육사오’)는 우연히 얻은 로또를 소재로 순수한 웃음을 전달하는 작품이다. 여기에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군 손에 들어간다는 설정까지 넣어 남북 관계에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돈이라는 욕망의 소재가 아이러니하게도 남북 군인을 연결하는 고리로 작용한 것이다.
‘육사오’(감독 박규태)는 바람을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버린 57억 1등 당첨 로또를 둘러싼 남북 군인들 간의 코믹 접선극이다. 1등 당첨 로또가 갑작스럽게 군대 안으로 들어오고, 여느 때처럼 근무를 서던 병장 천우(고경표)의 앞에 떨어진다. 너무 쉽게 날아온 탓인지, 로또는 또다시 쉽게 날아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군 용호(이이경)에게 도달한다. 절망한 천우는 자신의 1등 당첨 로또를 되찾기 위해 과감히 선을 넘어 북한으로 향한다. 용호 역시 로또의 당첨금을 알게 되고, 포기할 수 없는 이들의 조용한 남북 전쟁이 시작된다.
작품에서 선은 중요한 요소다. 외피로 보면, 선명하게 보이는 군사분계선을 의미한다. 사건의 발단이 로또가 군사분계선을 넘으면서 시작되고, 군인이 선을 넘으면서 남북 간의 갈등이 일어난다. 내피로 들어가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선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엔 갈등 요소였던 로또를 두고 갈등하는 사이 남북 군인들은 서로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짙게 그어졌던 마음의 선은 흐려진다.
선을 옅게 만드는 역할은 로또가 한다. 절대 넘을 수 없는 선을 가벼운 종이 한 장은 너무나 쉽게 넘나들지 않나. 결국 작품은 선이라는 건 단순한 표식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남북 군인들이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모습을 통해 선이라는 게 얼마나 의미 없는지를 알리는 거다. 돈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해지는데, 남북 간의 괴리를 흐리게 만드는 거다. 이 역시 로또가 만들어 준 셈이다. 로또를 차지하기 위해 달려가는 인물들은 남과 북에 상관없이 같은 목표를 갖고 있다. 이들은 생활이 조금이라도 편해지길 바랄 뿐이다.
전반적으로 순수한 캐릭터는 따뜻한 분위기를 만든다. 천우는 당첨된 로또를 꽁꽁 숨겨두지 않고 그저 좋아서 쳐다보다가 날려버린다. 비열하고 이기적인 인물이었다면, 어떻게든 거짓말로 로또를 가져올 수 있었겠지만 그런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또 인물들은 57억이라는 막대한 돈을 눈앞에 두고도 큰 꿈을 꾸지 않는다. 이들의 목적은 ‘부모님 틀니 새것으로 바꾸기’, ‘딸이 좋아하는 피아노 사주기’ 등 소소하다. 작은 행복을 좇는 이들의 모습은 순수하기 그지없다.
이를 완성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다채롭다. 전역한 지 얼마 안 된 고경표는 직전의 경험을 토대로 말년 병장 천우에 녹아든다. 생활관에서 후임을 시켜 텔레비전을 켜게 하는 행동, 누워서 로또 추첨 방송을 보던 자세에서 나오는 디테일은 실제 군인을 방불케 한다. 승일 역의 이순원의 북한군 연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태닝 등의 노력을 통해 외적으로 북한군과 가깝게 만들었고, 일상에서도 꾸준히 북한 사투리를 사용해 자연스러운 북한군의 모습을 완성했다.
극의 말미에 등장하는 SNS 장면은 MZ세대를 겨냥하는 한 방이다. 만철(곽동연)이 1등 당첨금을 찾으러 가는 경로가 실시간 SNS 화면으로 나오는데, 스마트폰 속 세상이 익숙한 MZ세대의 눈길을 끌기 충분하다. 여기에 빠르게 전환되는 장면, 경쾌한 효과음 등은 작품의 몰입도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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