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벤지 포르노 사이트에 딸의 사진이 올라왔고, 딸과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 4년간 가해자를 쫓았다. 범인은 잡았지만,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걸 막을 제도는 아직까지도 없다. 믿고 싶지 않지만, ‘미국판 N번방 사건’은 실존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인터넷에서 가장 증오하는 남자’가 담았다.
‘인터넷에서 가장 증오하는 남자’는 24살 케일라가 혼자 간직하려고 찍은 사진이 한 사이트에 올라오면서 시작된다. 휴대폰 용량이 없어 자신의 메일로만 전송한 사진이 어떻게 유출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혼란에 빠진 케일라는 어머니 샬럿에게 도움을 청하고, 샬럿은 사진이 올라온 리벤지 포르노 사이트 '이즈 애니원 업?'과 운영자 ‘헌터’를 타도하기 위한 전쟁을 시작한다.
답답하지만 통쾌하다. 처음 샬럿이 헌터에게 케일라의 사진을 내려달라고 했을 때, 헌터는 “내가 아니라 사이트 이용자들이 올린 사진이라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며 교묘히 빠져나간다. 이때 변호사인 샬럿의 남편 찰스가 나선다. 찰스는 헌터의 변호사에게 “사진을 내리지 않으면 엄청난 규모의 소송을 진행하겠다”라고 전했고, 사진은 바로 지워졌다. 샬럿이 헌터와 그의 추종자 ‘패밀리’로부터 신변 위협을 받을 땐 인터넷 해커 집단 ‘어나니머스(anonymous)’가 헌터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어나니머스는 해킹을 통해 그의 신분을 말소시키고, 은행 계좌까지 해킹해 모든 돈을 여성 단체에 기부한다. 이처럼 샬럿과 케일라가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시기적절하게 나타나는 조력자들은 관객이 작품 내 불편한 내용에 지치지 않고 끝까지 집중하도록 돕는다.
일련의 사건들이 눈앞에 벌어지듯 생생하다. 개인정보를 익명이나 모자이크 처리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품 처음부터 끝까지 ‘이즈 애니원 업?’으로 생긴 피해자, 그들을 돕는 조력자들까지도 자신의 신분을 그대로 노출한다.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작품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지는 건 물론, 자신의 얘기를 기꺼이 내보이는 출연자들의 용기에 놀랍기까지 하다.
국내 ‘N번방 사건’과 공통점이 많다. 두 사건 모두 SNS를 통해 피해자들을 압박하고 조종한 뒤, 그들의 인권을 철저히 짓밟는 범행 수법을 사용했다. 또한 N번방 사건의 중심 ‘박사’ 조주빈과 헌터는 공통적으로 자신들이 악마인 양 굴었다. 조주빈은 검거 당시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감사하다”라며 공분을 샀고, 헌터 무어는 스스로를 ‘전문적 삶 파괴자’라고 정의했다. 이들을 따르는 광적인 추종자들이 있다는 점도 유사하다. ‘박사방’ 이용자들은 조주빈을 왕처럼 떠받들었고, 헌터 무어의 ‘패밀리’들은 그를 위해 살해 협박을 할 정도였다.
‘인터넷에서 가장 증오하는 남자’에만 보이는 독특한 점도 있다. 대부분 언론에서 헌터를 범죄자가 아닌 ‘인터넷 악동’ 정도로만 다뤘다는 것. 헌터에 대한 인터뷰 기사가 나오는 것은 물론, 인기 토크쇼에 ‘이즈 애니원 업?’으로 생긴 피해자들과 헌터를 함께 초청하기도 한다. 미국 전역이 헌터 무어를 대놓고 주목한 격이다.
장장 4년에 걸친 샬럿의 치밀한 수사 끝에 헌터는 체포된다. ‘이즈 애니원 업?’ 운영을 위해 불법 해킹으로 개인적인 사진을 빼낸 게 명확히 밝혀졌기 때문. 그는 30개월 형, 평생 SNS 금지를 선고받는다. 30개월 형은 그가 셀 수 없는 피해자들을 만든 것에 비하면 가볍지만, SNS 금지는 그에게 꽤 의미가 클 것이다. ‘인터넷에서 가장 증오하는 남자’ 헌터를 인터넷에서 없애버린 건 세상에서 그를 지워낸 것과 맞먹기 때문이다.
답답한 점은 사건 발생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비슷한 범죄를 방지하는 연방법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 작품에서도 이 부분을 꼬집으며 관객에게 리벤지 포르노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헌터가 ‘리벤지 포르노 제왕’으로 군림하는 과정에 특별한 장치나 조력자가 없었다. 즉 제2의 헌터는 얼마든지 등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고, 또 필요한 이유다.
◆시식평 ? 4년간 악질들에 맞서 보이지 않는 전쟁을 펼친 샬럿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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