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광양항에서 브레인 붕괴사고를 일으킨 중국 제조업체와 한국 물류업체의 배상 비율을 달리 설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가해 행위의 공동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책임 비율 역시 같을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여수광양항만공사가 중국 제조업체 A사와 한국 물류업체 B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상고심에서 항만공사 측의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앞서 전남 광양항에서 2007년 10월 크레인 붐(boom·화물을 들어 올리는 크레인의 팔 부분) 붕괴 사고가 일어나 부두에 정박 중이던 덴마크 해운회사의 선박과 화물이 파손됐다.
항만공사는 크레인을 만든 A사의 제작상 과실과 항만공사로부터 크레인을 빌려 운용한 B사의 과실이 사고의 원인이라며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하급심은 항만공사가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지만 배상 범위는 제한돼야 한다고 봤다. 중국 A사와 한국 B사 모두 책임이 있지만 크레인 소유주인 항만공사도 하자 있는 크레인을 B사에 제공했으니 책임이 아예 없지는 않다는 판단이다. 남은 문제는 약 50억원 규모인 전체 책임을 누가 얼마나 질 것인지가 됐다.
크레인 붕괴는 하자 있는 제품을 만든 A사, 점검을 제대로 안 한 B사 양측의 잘못이기도 한 만큼, 이번 사건에서 A사와 B사는 '부진정 연대채무' 관계에 놓인다. 이 경우 원고인 항만공사는 서로 독립적으로 원인을 제공한 A사나 B사 어느 쪽으로부터도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 A사와 B사 둘 중 한쪽이 배상하면 다른 한쪽의 배상 책임은 사라진다.
1심은 종전 대법원 판례에 따라 가해자인 A사와 B사에 똑같이 80%의 과실 비율을 정해 연대책임을 지게 했다.
반면 2심은 A사에는 100%, B사에는 70%의 책임 비율을 각각 설정했다. 크레인 운용사인 B사의 경우 크레인 소유주인 항만공사의 잘못만큼의 책임은 덜어줘야 하지만, 제조사인 A사의 책임을 줄일 이유는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2심의 판결이 옳다고 판단했다.
기존 대법원 판례는 부진정 연대채무를 진 가해자들이 '공동불법행위'를 한 상황을 상정한 것이었다. 이 경우 가해자들의 실제 과실 정도에 차이가 있더라도 피해자에게 배상할 책임은 동일하게 부과됐다.
그러나 2심은 이번 사건에서 A사와 B사는 부진정 연대책임 관계지만 가해 행위의 공동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A사는 제작물 공급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책임이 있고, B사는 항만공사와의 임대차계약을 이행하지 않은 것이니 두 가해 행위는 떼어놓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두 가해자의 책임 비율 역시 똑같이 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은 "책임 제한에 관한 사실 인정이나 그 비율을 정하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비춰 현저하게 불합리하다고 인정되지 않는 한 사실심(1·2심)의 전권사항에 속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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