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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안보' 러에 맡긴 죄…유럽, '경기침체' 부메랑

노르트스트림1 가동중단 장기화 우려에

천연가스 가격 300유로 돌파

의존도 높은 독일, 가뭄까지 겹쳐 이중고

정치 불확실성 伊, 국채 공매도 금융위기 후 최대

경제 우려에 '1유로=1달러' 패리티도 깨져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 시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군사기술포럼에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유럽 경제에 대한 전망은 장밋빛이었다. 2년간의 팬데믹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 경제성장률이 4% 내외를 기록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상황은 180도 뒤집어졌다. 천연가스 대부분을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등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러시아 의존도를 높인 것이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에너지 위기와 물가 상승으로 올겨울 경기 침체에 빠지는 것이 확실시된다는 관측과 함께 위기가 ‘뉴노멀’이 됐다는 분석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27일(현지 시간)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유럽 경제의 에너지 위기감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지난 19일 러시아 국영 가스프롬은 독일을 거쳐 유럽으로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노르트스트림1의 가동을 오는 31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정비를 위해 중단한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가동 중단이 3일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며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폭등했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 표준인 네덜란드 TTF 가스 선물 가격은 25일 장중 10.2% 급등한 1㎿h당 321유로까지 치솟았다. 연일 사상 최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유럽 중에서도 독일의 상황이 안 좋다. 유럽 재정위기 당시 ‘성장 엔진’이라는 평가를 받던 제조업 강국 독일이지만 에너지를 지나치게 러시아에 의존해온 탓에 부메랑을 맞았다. 러시아가 가스관을 잠그자 부랴부랴 석탄발전으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유럽을 뒤덮은 최악의 가뭄에 강이 말라 선박을 통한 석탄 공급마저 지연되고 있다. 라인강 상류에 몰려 있는 제조 업체들의 수출품도 배를 통해 운반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23일 발표된 독일의 8월 종합 구매자관리지수(PMI)는 47.6으로 2년 2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최근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요아힘 나겔 총재는 올가을 독일 물가 상승률이 1951년 이후 처음으로 10% 선을 넘기고 내년에도 고공 행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독일의 7월 물가 상승률은 7.5%였다.

이탈리아에도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S&P 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25일 현재 이탈리아 국채 공매도 물량은 390억유로로 2008년 1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탈리아 경제 불안에 베팅하는 투자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이탈리아는 독일에 이어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가 역내 2위인 국가다. 여기에 다음달 새로운 총리 선출도 앞두고 있어 정치적 불확실성도 커졌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 가스 수입이 중단되면 이탈리아 경제가 5% 이상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 밖에 다른 유럽 국가들의 상황도 좋지 않다. 가계에서 에너지 비용 부담이 늘어나다 보니 소비지출이 빠르게 위축되는 실정이다. 유로존의 6월 소매판매는 전년 대비 3.7% 줄어 지난해 1월 이후 1년 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기업 역시 에너지 부족과 물가 급등에다 가뭄에 따른 운송난까지 겹쳐 애를 먹고 있다. 로이터는 유럽의 알루미늄 및 아연 제련 설비의 약 절반이 이미 가동을 중단한 상태이며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비료 생산도 대부분 중단됐다고 전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캐롤라인 베인은 “천연가스 가격이 지난 2년 평균보다 10배 이상 상승했다”며 “현재의 천연가스 쇼크는 1970년대 오일 쇼크의 2배에 가까운 충격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알렉상드르 봉파르 까르푸 최고경영자(CEO)는 “위기가 뉴노멀이 됐다”고 진단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ECB) 본점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이에 따라 유럽의 경기 침체, 나아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날로 커지는 실정이다. 로이터는 “겨울에 유럽 경제가 침체에 진입한다는 것이 시장 참여자들의 기본 전망”이라며 “특히 천연가스의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독일과 이탈리아가 곧 침체에 진입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고 전했다.

이 같은 우려 속에 경제의 체력을 보여주는 유럽의 화폐가치도 급락하고 있다. 지난 22일 ‘1유로=1달러’의 ‘패리티’가 깨지며 유로화 가치가 약 20년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유로존은 ‘기축통화’인 달러의 위상을 부러워하면서도 달러보다 유로화의 가치가 더 높다는 것을 ‘자존심’으로 삼아왔지만 이제는 1유로로 1달러도 못 받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노무라는 9월 말까지 달러·유로 환율이 0.975달러까지 떨어지고 이후 0.95달러 내외까지 추가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유럽의 고용 상황이 상대적으로 양호해 사정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사벨 슈나벨 유럽중앙은행(ECB) 이사는 “인력 부족과 역사적으로 낮은 실업률이 계속되고 있다”며 “경기 침체에 접어들더라도 기업들이 대규모 감원을 꺼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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