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를 믿어주세요. 우리가 앞으로도 (노동) 운동을 해야 하는데 많은 분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정부가 먼저 (파업을) 풀라고 하지만 (풀면 지원한다는) 약속을 한 번도 안 지켰습니다.” (유최안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이 장관이 지난달 19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하청노조 파업 현장에서 단식 농성 중이던 유 부지회장과 나눈 대화다. 당시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 사태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노동정책에 대한 첫 시험대라는 점에서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다. 경찰이 파업 현장을 둘러싼 데다 정부가 공권력으로 파업 노동자들을 강제해산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등 긴장감도 높았다. 30여 년 노동계에 몸을 담았던 이 장관이 직접 현장으로 달려간 이유다. 이 장관은 유 부지회장에게 이번에는 정부가 약속을 지킨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정부는 약속대로 노사를 설득하며 공권력 투입이 아닌 노사 협상으로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렸다.
4월 14일 이 장관이 윤석열 정부 초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될 때 고용부 기자실이 들썩였다. 지명 소식을 들은 노동계의 한 인사는 기자에게 “정말 맞는 거죠”라고 되물었다. 노동계 인사라면 한 사람만 건너도 알 정도였던 이 장관은 고용부 장관 하마평에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대 고용부 장관은 국회의원, 고용부 관료, 교수가 번갈아 맡았다. 특히 초대 고용부 장관은 핵심 국정과제를 밀고 가야 하는 상징적인 자리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전부터 문재인 정부와 다른 친기업 정책을 예고했다. 이 장관은 노동 운동가로서 토론회마다 반노동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대표 논객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철학에 맞춘 인사가 오는 자리에 ‘노동 운동가’를 예상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 장관은 이달 18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취임 이후 그는 노동 운동가와 정책 담당자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이 장관은 취임 첫 현장 행보로 서울 보라매공원 산업재해희생자위령탑을 찾았다. 역대 장관의 취임 초기 행보로 처음이다. 이 장관은 취임사부터 ‘안전한 일터’가 최우선 순위 정책이라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정부의 국정과제는 중대재해법과 같은 안전관계법령 정비다. 경영계는 중대재해법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고용부는 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정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와중에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사태가 터졌다.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 사태는 이 장관의 존재감을 보여줬다. 노동정책과 노정 관계는 소통이 첫 번째다. 최근 이 장관은 유 부지회장과 약속한 조선업 이중구조 해소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중구조는 최근 발생하는 파업의 핵심 요인인 동시에 노동시장의 고질적인 병폐다. 이 장관은 25일 교수 등 노동 전문가를 만난 자리에서 “빠른 시일 내 대책을 발표한다”고 말했다. 당초 임금과 근로시간 개편 중심이었던 노동 개혁 테이블에도 이중구조 해소가 핵심 의제로 올라왔다.
이 장관은 인사청문회부터 노동 운동가로서 정체성을 묻는 국회의 질문이 나올 때마다 얼굴이 상기됐고 때로는 침묵했다. 1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달랐다. 노동 운동가 시절 기업의 과도한 손해배상 소송을 막는 ‘노란봉투법’에 찬성했던 소신이 바뀐 것이냐는 질문에 “당시 노조 간부로서, 지금은 국무위원으로서 역할이 있지만 마음은 똑같다”며 “무엇이 정말 노동자를 위한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이 솔로몬의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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