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여당 대표가 당을 상대로 가처분을 신청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다만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법원의 가처분 인용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전국위원회 의결 등에 대한 효력 정지와 비대위원장에 대한 직무 집행정지 가처분을 제기하면서도 정작 본인의 징계 자체에 대한 효력 정지를 요구하는 가처분을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처분이 인용돼도 이 대표가 당 대표 직무에 복귀할 수 없어 본인에게 큰 실익은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법원은 26일 이 전 대표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절차상 하자는 없으나 실체적 하자가 있었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즉 비상대책위를 꾸린 국민의힘이 사실상 비상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논거는 다음과 같다. 국민의힘 최고위원회는 당 대표,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최고위원 5명 등 9명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리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그리고 김용태 최고위원은 사퇴하지 않았다. 즉 3명의 구성원이 남았다. 게다가 당 대표 직무대행이 최고위원 1명을 지명할 수 있으니 최고위 구성원은 4명이 된다는 것이다. 반면 당헌 유권해석 권한이 부여된 국민의힘 상임 전국위는 앞서 당시 상황을 비상 상황으로 규정했다. 법원은 대체로 판결에서 정당의 의사 결정에 관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국민의힘에 나름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절차에 신경을 많이 썼을 것이다. 그런데도 법원은 비대위에 실체적 하자, 즉 비상 상황의 부존재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비상 상황은 대개 지도부의 잘못으로 초래된다. 그리고 기존 지휘 라인으로는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없으니 비대위가 꾸려지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비상 상황이 발생했다고 하면서도 기존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은 그대로 자리를 지키도록 했다. 이것을 법원은 실체적 하자라고 판단한 것이 아닐까.
재판부는 이번 결정에 시간을 많이 끌었다. 어쩌면 인용 결정과 기각 결정 모두를 준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막판까지 결론을 고민했을 수 있다. 그런데 연찬회에서 원내대표가 술 마시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비상 상황이라고 인정할 수 있었을까.
리더는 말 그대로 ‘이끄는’ 사람이다. 즉 먼저 보는 사람이다. 볼 수 있어야 조직을 인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봐야 하는가. 사람도 봐야 하고 변화도 읽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리더는 ‘때’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조직의 미래는커녕 당장 자기 자신의 거취 시점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최고 리더의 자리에 앉아 있다면 그 조직에 과연 장래가 있다고 할 수 있는가. 현 정부나 여당을 바라보는 많은 국민이 걱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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