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이 만병의 원인이라는 통념을 뒤집는 이른바 ‘비만의 역설(obesity paradox)’이 암환자에게서도 입증됐다. 뚱뚱한 사람일 수록 암수술 후 생존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새롭게 도출된 것이다.
삼성서울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이종환·박정찬 교수, 순환기내과 이승화 교수 연구팀은 2010년 3월부터 2019년 12월 사이 수술을 받은 암환자 8만 7567명을 추적 관찰한 결과비만 환자의 사망 위험이 정상 체중이거나 마른 환자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31일 밝혔다.
비만은 그 자체가 질환이면서 다른 질환의 원인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일부 질환의 경우 비만한 상태가 치료에 도움을 준다는 뜻에서 비만의 역설이란 가설이 세워졌다. 앞서 관상동맥질환, 만성폐쇄성폐질환, 만성신부전 등으로 수술할 경우 비만인 환자의 예후가 더 양호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소화기암과 폐암, 신장암 등에서도 부분적으로 효과가 확인됐다.
삼성서울병원 연구팀은 암환자들을 체질량지수(BMI)에 따라 △18.5kg/㎡ 미만인 저체중 그룹 2787명(3.2%) △18.5kg/㎡ 이상 25kg/㎡ 미만인 정상 체중 그룹 5만 3980명( 61.6%) △25kg/㎡ 이상인 비만 그룹 3만 800명(35.2%) 등 세 그룹으로 나누고 환자들의 수술 후 사망 위험을 비교했다.
그 결과 수술 후 3년 내 전체 환자의 6.4%인 5620명이 사망했는데, 이들의 BMI만 놓고 봤을 때 비만 환자의 사망 위험이 가장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연구팀에 따르면 비만 환자의 사망 위험은 정상 체중 환자 보다 31% 낮았다. 저체중 환자에 비해선 62%나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비만의 역설은 같은 비만 환자 중에서도 뚱뚱할수록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였다. BMI가 30kg/㎡는 이 넘는 환자 대상으로만 추가 분석을 시행한 결과 정상 체중 환자보다 사망 위험이 43%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암의 재발 위험 역시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비만 환자의 재발 위험은 정상 체중 대비 19%, 저체중 환자와 비교하면 16% 줄었다.
이러한 결과가 도출된 배경에 대해 연구팀은 몇 가지 추론을 내놨다. 우선 체력적 부담이 큰 암수술의 경우 비만한 환자가 정상체중이나 저체중 환자보다 상대적으로 기력을 회복하는 데 용이한 측면이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비만 환자에서 보이는 우월한 수술 후 염증 반응을 억제하는 능력이 환자의 예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비만 환자의 경우 여러 질환을 동반 하는 경우가 많아 각종 검사와 검진을 자주 받다보니 암을 상대적으로 빨리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득이 될 수 있었을 것이란 게 연구팀의 판단이다.
다만 이러한 결과가 비만이 암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낙관하는 결론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고 연구팀은 지적했다. 특히 유방암, 부인암과 같이 비만에 따른 호르몬과 밀접한 여성암의 경우 비만의 역설이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를 주관한 이종환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암종과 병기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분석한 결과여서 향후에 보다 정교한 연구가 이어져야 비만의 영향을 정확히 평가 내릴 수 있다”며 “수술을 앞둔 암환자의 체중이 적정 수준 이하라면 상대적으로 예후가 불량하다는 걸 입증한 만큼 이러한 경우 환자와 의료진 모두 주의 깊게 살펴보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 최근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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