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핵관’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윤석열 정부에서 어떠한 임명직 공직을 맡지 않겠다”며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30일 윤핵관 영수인 권성동 원내대표가 의원총회에서 ‘선(先) 수습, 후(後) 사퇴’를 시사한 데 이어 장 의원도 2선 퇴진을 약속한 것이다. 정권 교체의 일등 공신으로 권력을 거머쥐었던 윤핵관 ‘투톱’이 정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퇴진하면서 김기현·안철수 의원 등 차기 당권 주자들이 세력을 구축해 전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윤핵관과의 투쟁을 기치로 내걸어온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해서는 거취 압박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31일 장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저는 이제 지역구 의원으로서의 책무와 상임위원회 활동에만 전념하겠다. 계파 활동으로 비쳐질 수 있는 모임이나 활동 또한 일절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임명직 공직을 맡아 실질적인 권력을 쥐지 않는 것은 물론 친윤계 의원들의 구심점 역할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는 “최근 당의 혼란상에 대해 여당 중진 의원으로서, 인수위원회 시절 당선인 비서실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무한 책임을 느낀다”며 반성하는 자세를 보였다.
이는 전날 당 의총에서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 등이 주장한 ‘윤핵관 2선 퇴진론’을 수용한 모양새다. 이 전 대표를 둘러싼 당 내홍과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대해 윤핵관 책임론이 계속되자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두 사람은 당 내홍의 중심에 있었다. 장 의원은 대선 운동 때부터 이 전 대표와 격한 갈등을 빚어왔다. 권 원내대표는 ‘대통령 문자 공개’ 등의 실수로 당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당 안팎에서는 국민들이 윤핵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된 이상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다. 또 일각에서는 윤핵관이 애초에 실력이 부족했다며 실정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장 의원은 막후에서, 권 원내대표는 전면에서 활동을 이어왔다. 장 의원은 당 대표 직무대행 체제에서 비대위로의 전환을 물밑에서 밀어붙인 것으로 거론된다. 권 원내대표의 경우 비대위 전환 뒤에도 원내대표 자리를 지키면서 결국 자리 욕심을 부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처럼 버티기 모드였던 장 의원과 권 원내대표가 잇따라 2선 후퇴를 현실화한 데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해석도 있다. 윤 대통령은 28일 권 원내대표와 비공개로 만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자리에서 서둘러 내홍을 봉합하는 임무까지만 해달라는 윤 대통령의 의중을 전해 받았다는 관측이다. 장 의원의 백의종군 선언 역시 윤심을 전달받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최수영 정치평론가는 “국민들이 보기에 책임지는 모습”이라며 “사태 수습에 순기능을 보태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핵관들의 퇴진으로 당 권력에 공백이 생기면서 차기 당권 주자들의 발걸음이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장 의원은 간장연대(안철수·장제원), 김장연대(김기현·장제원) 등으로 묶이며 친윤계의 구심점으로서 차기 당권을 좌지우지하는 존재로 언급돼왔다. 당권 주자들은 이제 친윤계를 향한 개별적인 구애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안 의원이 최근 새 비대위 추진에 반대 의사를 밝히며 일부 중진들과 동조하는 의견을 냈다. 이에 김 의원은 안 의원을 향해 무책임하다고 비판하면서 비대위 추진에 힘을 싣는 의원들과 함께했다.
이 전 대표를 향한 사퇴 압박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표는 윤핵관들을 대통령과 나라를 망칠 존재로 지목하며 투쟁의 명분으로 삼아왔다. 따라서 윤핵관 투톱이 퇴진한 상황은 자연히 이 전 대표의 명분 약화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 전 대표는 “위장거세쇼”라며 맞섰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이들이 지난 한두 달간 당을 혼란 속에 몰아넣은 일이 원상복귀 또는 최소한 중지되고 있느냐”고 비판했다.
대통령실의 대대적인 내부 감찰을 통한 인적 쇄신에도 힘이 실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인적 쇄신 과정에서 윤핵관 측근들을 솎아낸다는 시선을 받았는데 이와 관련한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여권 관계자는 “윤핵관과 이 전 대표 모두 국민들에게 큰 피로감을 안겨주고 있다”며 “모두가 새롭게 시작해야 대통령실과 여당이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경우 기자 bluesquare@sedaily.com, 조권형 기자 buzz@sedaily.com, 주재현 기자 jooj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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