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을 바꾸는 미국의 전략은 용의주도하고 치밀했다. 중국의 도전을 물리치고 세계 경제를 주도한다는 목표에 여야는 물론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했다. 그 결과를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한국을 포함한 세계의 돈이 블랙홀처럼 미국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미국 주식에 대한 개인의 투자와 현지 생산을 위한 기업의 투자가 넘치면서 달러 가치는 오르고 있다. 게다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물가를 안정시킨다며 적극적인 고금리 정책까지 펼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자국 기업의 복귀(리쇼어링)는 물론 동맹국 기업의 미국 투자(프렌드쇼어링)까지 촉진하면서 중국을 겨냥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와 칩4 동맹을 구축하고 있다.
미국의 굴기는 한국에 기회이자 위험 요인이다. 안보 동맹을 넘어 경제기술 동맹으로 격상된 미국과의 관계는 한국이 무역 및 자원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데 이용할 수 있다. 미국의 첨단 기술을 전수해 경쟁력을 키우고 제3국의 경제와 자원 개발에 공동 진출해 시장을 확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라는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국 자동차와 2차전지 기업들은 미국의 최대 투자가지만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에는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는 늘었지만 미국 기업의 한국 투자는 그렇지 않아 한국의 일자리는 유출되고 있다. 무산 조짐을 보이는 제너럴모터스(GM)의 한국 내 전기차 생산이 그렇다.
한국은 미국을 활용해야 한다. 먼저 한국의 자체적인 글로벌 공급망 전략부터 만들어야 한다. 골자는 식량은 물론 원자재 및 중간재 등의 공급망에서 허점을 찾고, 보완 가능한 정책을 만들며, 민관이 힘을 합치는 것이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은 진작부터 해왔고 일본도 미국처럼 경제안보법을 만들었다. 섣부르지만 한국에 대한 일본의 반도체 소재 등의 수출 통제나 중국의 요소수 수출 통제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 경제안보 정책이 강화됐지만 아직 구체적인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정부 내에서도 손발이 맞지 않아 권한이 막강한 미국 하원의장의 방한을 소홀히 다뤘다는 지적도 나왔다.
리쇼어링 정책은 전면 강화하고 프렌드쇼어링 정책도 도입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한국 기업이 떠나고 외국 기업은 한국으로 오지 않는 이유, 숙련 인력 양성 교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얼마 전까지 싼 인건비에다 중국몽을 믿었던 한국 기업들은 너도나도 중국으로 갔다. 하지만 중국이 한국 등 외국 기업을 차별하고 정치적 이유로 보복하자 베트남 등으로 옮겨갔다. 중국과 베트남에 대한 투자는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최고로 많은 나라가 됐다. 이제는 미국으로 대거 움직이기 시작했다. 올해 벌써 한국은 리쇼어링과 프렌드쇼어링에 따른 미국의 일자리 창출에 가장 기여한 나라가 됐다.
공급망 강화의 궁극적인 힘은 한국 자체에 있다. 국제 질서가 불확실하고 급변하는 만큼 더욱 그렇다. 미국이 그렇듯이 기술 개발과 숙련 인력 양성에 강한 나라가 되면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고용률과 생산성을 좌우하는 노동시장의 법·제도와 관행이 합리적이면 자원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적 자원의 활용도가 그만큼 커진다. 기술과 산업 변화에 대한 탄력적 대응을 뒷받침하는 노사 관계가 협력적이면 산업과 고용의 기반도 튼튼해진다. 미국이 글로벌 공급망 재구축 작업에 성과를 내고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앞서가는 요인도 바로 이러한 장점에 있다. 한국의 미국 활용법은 이에 대한 자각부터 요구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