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 씨는 주말이면 필름카메라를 들고 서울 동묘로 향한다. 그가 그렇게 3년간 필름카메라에 담아낸 것은 ‘멋쟁이 어르신들’이다.
처음부터 그분들을 찍은 것은 아니었다. 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해 서울 동묘를 즐겨 찾다 보니 옷을 잘 입는 어르신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아무도 그분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 씨는 그렇게 그분들을 사진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가 3년 간 찍은 멋쟁이 어르신들의 사진은 6,000장이 넘는다. 거기에는 단순히 사진만 있는 게 아니다. 그분들이 살아온 세월과 그분들의 이야기가 다 담겨 있다. 지난 5월에는 이 사진과 이야기를 담은 사진집을 냈다.
“제가 찍는 사진을 통해 일생을 옷을 좋아해 독특한 분으로 살아온 어르신들에게 이제는 당당해져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김동현 씨를 만났다.
-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한다.
“스트리트패션을 찍고 있는 사진작가 김동현이라고 한다.”
- 우연히 인터넷에서 ‘멋쟁이 어르신들’사진을 봤는데, 김동현 사진작가의 작품이더라. 사진들이 하나같이 인상적이었다. 언제부터 어르신들을 찍기 시작한건가.
“2019년부터 찍기 시작했으니까 3년 정도 됐다. 뒤늦게 대학에 들어 패션을 전공했다. 이십대 초반의 나보다 어린 친구들과 경쟁하기 위해선 나만의 무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스트리트패션에 관심을 갖고 사진을 찍다가 멋쟁이 어르신들이 눈에 들어왔다.”
- 주로 사진 찍는 곳이 동묘 갔던데 맞나.
“맞다. 패션을 전공할 정도로 옷을 좋아하지만, 학생이다 보니 매번 많은 돈을 주고 옷을 사 입기는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TV프로그램을 통해 서울 동묘를 알게 됐고, 실제로 가보니 신세계였다. 그렇게 동묘에 자주 다니다 보니 서서히 멋쟁이 어르신들이 눈에 들어와 관심을 갖게 됐다.”
- 그럼 요즘도 주로 서울 동묘에서 촬영을 하나.
“장소를 넓혀 서울 인사동, 남대문 등으로 출사를 나간다.”
- 피사체로서 그분들의 매력을 이야기해준다면.
“아시다시피 같은 옷도 누가 입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지 않나.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라고 하더라도 어르신들이 입으면 느낌이 다르다. 그런대서 오는 신선함이 있다. 또한, 요즘 유행하는 뻔한 룩이 아닌 본인만의 스타일로 멋을 낸 분들의 패션은 날카로운 데가 있다.”
- 그런 그분들의 매력을 사진에 다 담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맞다. 그래서 디지털 카메라가 아닌 필름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다. 필름카메라가 주는 투박함이 어르신들의 패션에 담긴 살아온 세월과 날카로운 매력을 잘 표현해주는 듯하다. 필름카메라의 또 다른 매력은 다른 데 있다.”
- 필름카메라의 또 다른 매력이라, 뭔지 궁금하다. 뭔가
“필름카메라는 필름 36장을 다 찍어야만 현상이 가능하다. 20장 정도 찍었을 때, 그만 찍고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결과물이 궁금해 더 찍게 된다. 나를 더 움직이게 하는 일종의 장치인 셈이다(웃음).”
- 대부분이 일반인이라 사진을 찍는다고 할 때 호의적이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어르신들의 사진을 찍는 나름의 방법이 있나.
“스트리트패션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바로 섭외다. 처음 시작할 당시 나는 섭외를 하기도 전에 거절당할 것을 걱정했다. 그렇다 보니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더라. 그 벽을 깨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것은 정말 오롯이 나와의 싸움이었다. 지금은 다가가 명함을 내밀면서 기존에 찍었던 사진을 보여주며 나를 소개한다. 그러면서 사진을 찍어 드리고 싶다고 제안한 뒤 연락처를 받아 사진을 보내드린다.”
- 그럼 사진을 받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는 다 사진을 보내드리고 있나.
“그렇다. 인생은 ‘기브앤데이크’ 아닌가(웃음). 얻는 게 있어야 사진을 찍도록 허락해 준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 그렇게 인연을 맺어 가끔 연락을 주는 분도 있다.”
- 주로 어떤 식으로 연락이 오나.
“지금 동묘에 있는데 혹시 동묘냐고 묻는 식으로 연락이 온다. 마침 동묘에 있으면 만나 뵙고 인사를 나눈다.”
- 3년 간 촬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분이 있을 것 같은데.
“당연히 있다. 많은 분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어르신을 뽑자면 서병구 교수다. 이분은 <캣츠>, <스타가 될 거야>, <명성황후> 등의 안무를 만든 유명 안무가이기도 하다. 이분도 동묘에서 사진을 찍다 인연을 맺게 됐는데 패션을 전공한 사람이 봐도 옷을 너무 세련되게 잘 입는다.”
- 최근에 책이 나왔다고 들었다.
“맞다. 지난 5월에 그간의 결과물이 책으로 출간됐다. 3년간 촬영한 사진을 세어보니 대략 6,000장 정도 되더라. 책에 사진만 있으면 보는 이들이 지루할 수 있어 사진에 스토리를 담아내 기존의 사진집과는 다른 책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 책을 낸 후 달라진 게 있다면.
“정말 소소하게 달라지고 있다. 지금 인터뷰하는 것처럼 언론에서 연락도 많이 오고 해외출판에이전시와 출판 계약을 맺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를 사진작가로 봐주는 분들이 늘어나고 내가 말하려는 메시지를 들으려고 하는 게 느껴져서 너무 좋다.”
- 그런 변화들이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나.
“물론이다. 긍정적인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웃음). 책을 한 권 냈다고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한 건 아니지 않나. 정말 이제 시작이다 보니 미래에 대한 고민이 크다. 어떤 프로젝트로 다가가야 할지, 내가 잘해 낼 수 있을지 걱정되고 고민도 하지만 멈추진 않을 생각이다.”
- 멋쟁이 어르신들 사진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
“젊은 세대와 어르신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가 다르다. 나와 같은 젊은 세대에게는 이분들의 사진을 통해 평생 옷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 즐겨 입은 스타일을 나이가 들었다고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어머님, 아버님들에게는 당당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사진을 찍으며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옷을 좋아해서 혹은 옷을 너무 ‘잘’ 입어서 일생을 독특한 사람으로 취급받아온 분들이 많다. 이제 그분들을 보며 우리가 멋있다고 말해주고 있으니 당당하라고 말하고 싶다.”
- 앞으로도 멋쟁이 어르신들 사진을 계속 찍을 건가.
“물론이다. 일단 다음 프로젝트론 어머님들의 파마머리 색깔과 관련해 사진을 찍으려고 기획하고 있다. 사진을 찍으면서 어머님들의 파마머리 색깔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 단순히 갈색이나 검정 색깔로 염색하는 게 아니더라. 그 파마머리를 보면서 젊음이 다한 머리카락에 개성을 불어넣어 또 다른 생명을 더하는 느낌이었다. 이 느낌을 사진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 중이다. 더불어 지금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이발소나 미장원의 안쪽과 그분들의 이야기를 사진에 녹여내기 위한 기획을 하고 있다.”
-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언젠가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다. 사진작가로 자리 잡으려는 간절함으로 차별화를 위해 달려오면서 놓치고 온 것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 하나가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사실 그게 정말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아마도 그것을 찾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웃음).”
- 그럼 이번 주 주말에도 필름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서는 건가.
“물론이다. 언제나 시간이 날 때마다 사진을 찍는다. 멋쟁이 어르신이 있는 곳에서 그 분들을 찍고 있는 나를 우연히 보더라도 놀라지 말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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