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금 지급을 위한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씨중공업의 국내자산 매각 여부에 대한 대법원의 결정이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1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이번 사건은 당초 예상과 달리 심리불속행 기한과 주심 대법관 퇴임 기간까지도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서 재판부가 한일 양국 간 외교적 파장까지도 고려해 재판을 지연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는 강제동원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가 미쓰비시를 상대로 낸 특허권 특별현금화 명령 재항고 사건에 대한 심리를 일시 중단한 상태다. 이번 사건의 주심인 김 전 대법관이 지난 2일 퇴임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총 14명의 대법관 중 김명수 대법원장과 김상환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을 제외한 12명이 3개의 소부를 꾸려 사건을 심리하지만 당장 이번 사건을 담당할 대법관 1명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번 사건의 출발은 2012년 10월 김성주, 양금덕 할머니 등 강제동원 피해자 5명이 일제강점기 미쓰비시가 운영하던 공장에서 일을 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했다며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다. 대법원은 2018년 11월 미쓰비시 측에 피해자 1인당 1억~1억5000만원의 위자료를 배상하라고 결론내렸지만 미쓰비시가 위자료 지급을 거부하면서 미쓰비시의 국내 자산인 상표권과 특허권 압류 및 매각 소송으로 번졌다. 미쓰비시 측이 법원 결정에 불복해 재항고하면서 소송에만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다.
법조계에선 대법원이 이미 2018년 미쓰비시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만큼 미쓰비시 소유의 자산 매각 및 현금화 명령을 인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따라 심리불속행 기한인 지난달 19일 안에 결정이 내려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심리불속행은 법원이 사건을 접수한 지 4개월 이내에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원심을 유지하는 기각 결정이다.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기한을 넘기자 지난 1일에는 김 전 대법관의 퇴임을 앞두고 대법원이 결정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지만 대법원은 두 차례나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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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결정이 늦어진 데에는 재판부가 외교적 파장을 고려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대법원의 결정과 별도로 정부는 외교부를 중심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해결 방안을 논의 중이다. 앞서 심리불속행 기한을 앞두고 미쓰비시 측이 대법원에 한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언급하며 매각 명령을 보류해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고, 외교부 역시 비슷한 내용의 의견서를 대법원에 전달한 것이 대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일각에선 사건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특히, 김 전 대법관의 후임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 임명이 지연되면서 대법관 공백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오 후보자가 조만간 임명되더라도 재판부가 재구성될 경우 사건을 원점부터 다시 들여다볼 가능성도 크다. 전원합의체에 회부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13명의 대법관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될 경우 그동안 사건을 심리하던 대법관 외에 나머지 대법관들이 처음부터 사건을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에 올해 안에 결론이 나올지도 불투명하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대법원이 자산 매각 결정을 번복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다만, 이번 사건이 워낙 정치적으로 복잡하고 정부의 요청도 있었기 때문에 김 전 대법관이 퇴임 전 결론을 내리지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오 대법관 후보자가 임명될 경우 주심을 맡아 빠르게 심리를 진행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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